새벽에 맥주 두 캔을 땄다. 도저히 그대로는 잠 못 들 것 같아서였다. 애초에 유럽인들이 시작한 잔치가 올림픽임은 내 알겠으나 사람을 초대했으면 어떤 손님이든 누구나 공평하게 대접을 해야 하거늘, 세상에 우리가 호구냐고!
만만에 콩떡인 나라가 스포츠 강대국인 것이 배 아파 그리 장난질들인가, 첫날 수영에서 둘째 날 유도, 셋째 날 펜싱에 이르기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오심에 시달리다 보니 열대야가 아니라 화병에 골치가 지끈거리는 듯했다. 펜싱 검을 손에 쥔 채 하염없이 우는 한 여인이 있었다.
잘 공격했고 잘 방어한 탓에 다 이긴 경기란 걸 누구나 다 알았으나 오로지 그 경기를 망 봤던 심판들만 몰랐던 모양이다. 이미 죽어버린 1초를 붙들고 안고 어르고 그것도 모자라 어떻게 한번 살려보겠다며 서로 머리 맞댄 채 뭐라 흥분하며 떠들어대는 응급처치 속에 그 1초의 죽음이 더 부끄러워지는 걸 왜 모르냐고.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고 한 여인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려댔다.
얼마나 억울했을까. 나 같으면 곡을 하고 욕을 했을 텐데 관중석으로부터 구경거리처럼 시선이 한데 꽂혀서는 일어났다 앉았다 울었다 그쳤다 그렇게 홀로 내처짐을 여지없이 증명해 보인 한 여인, 과연 누구의 상징이겠는가. 입맛이 썼다. 내가 심판이라면 그 자리에서 머리 숙여 아까는 잘못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했으련만 아직 모르시나 보다. 때론 바닥까지 떨어뜨려야 되살아나는 게 진짜 권위인 것을.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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