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타고난 정치인이다. 그가 한 달 반의 침묵을 깨고 나서자 대선정국이 요동친다. 안철수는 의사 출신답게 정말 맥과 혈을 잘 집는다. 꼭 필요한 시점에 정확하게 급소를 찌른다. 안철수는 후흑(厚黑)하다. 낯빛을 봐서는 속을 알 수가 없다. 배 안에 구렁이가 몇 마리나 들어앉아 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저 해맑은 얼굴로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자기가 편한 방식대로 이야기한다.
아이러니다. 지난해 9월부터 계속되는 안철수 바람의 원동력은 정치 불신과 정치인에 대한 혐오다. 기성 정치를 그토록 미워하고 정치인에 대해서 지긋지긋해하면서 정작 안철수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의 정치에 대한 기대감의 발로인가. 아니면 안철수가 하는 일련의 행위를 정치행위로 보지 않는 탓인가. 분명 정치를 하고 있는데 심증은 있는데, 본인 입으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니 물증이 없다. 그저 안철수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 볼 수밖에.
11개월 동안의 안철수 행보를 보면 마치 물 찬 제비같이 날렵하다. 지난 해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11월 14일 자신소유의 주식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대중들은 메시아를 만난 듯 환호했다. 12월 1일 19대 총선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대중의 관심도 조금 심드렁해지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강력한 박근혜 대항마로 등장했다. 그러자 안철수는 올해 2월 6일 전격적으로 안철수재단 창립설명회를 가졌다.
총선이 한창이던 4월 9일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영상편지에서 "투표율이 70%가 넘으면 미니스커트를 입겠다"고 야권을 노골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7월 19일 출간한 에선 야권의 총선패배가 자신의 사실상 대선출마를 견인했다고 버젓이 이야기하고 있다. 더욱이 여야가 본격적으로 당내경선에 돌입하는 시점에 안철수가 책을 내고 힐링캠프에 출연해 유권자의 시선을 빼앗아 가버리니 정치권 전체는 물벼락 뒤집어 쓴 잔칫집 꼴이다.
안철수는 기업인답게 치밀하다. '비용 대비 효과' 분석이 철저해 보인다. 안철수재단 창립설명회 일주일 후인 2월13일부터 21일까지 7영업일 동안 6차례에 걸쳐 안철수 본인 소유의 주식 86만주를 매각해 930억원을 챙겼다. 한국거래소의 공시에 따르면 당초 안랩(안철수 연구소)의 지분 37.14%(372만주)를 소유한 안철수는 그 1주일동안 8.58%(86만주)를 팔아 현재는 286만주(28.56%)만을 소유하고 있다. 물론 자기 주식을 자기 마음대로 파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으나 입맛이 영 개운치 않다.
안철수재단(www.ahnfoundation.org) 웹사이트는 오픈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허전하다. 출범을 호언한 지가 반년이 다돼가는데도 몇 달째 "재단명 공모에 참여해 주신 4,045명의 재능 기부자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달랑 한 마디다. 공식적으로 안철수는 재단의 출연자일 뿐이고 그 운영에 대해선 모른다는 입장이니 달리 할 말은 없다. 다만 안철수가 지난해 11월 약속한 소유주식의 절반은 출연했는지 궁금할 뿐이다.
을 읽다가 헛웃음이 터졌다. 재벌조합 성격의 전경련에 속한 대기업들이 노동조합 설립을 막는 행태를 비난하는 대목에서다. 안랩은 3월말 현재 747명의 직원들이 연간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이다. 그런대 정작 안랩에는 노조가 없다. 물론 안철수는 안랩의 대주주일 뿐이고 대표이사는 따로 있으니 그가 대답할 의무는 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인 것은 인지상정이기도 하고.
안철수는 "대선출마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주어지는 것"이라며 시대와 국민이 원한다면 '출마해주겠다'는 식이다. 이건 아니다. 언제까지 속내를 감추고 결과에 대한 부정적 책임은 국민에게 떠넘기려고 하는가. 정자정야(政者正也), 정치의 본령은 정직이다. 그렇지 않으면 구악(舊惡)을 대체하는 신악(新惡)일 뿐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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