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와의 권력 투쟁 끝에 탄핵 위기에 처했던 트라이안 바세스쿠(61) 루마니아 대통령이 가까스로 대통령직을 지켰다. 바세스쿠 대통령은 2007년에도 탄핵 국민투표에 몰렸으나 탄핵안 부결로 축출 위기를 면한 적이 있다.
AFP통신 등 외신은 29일 바세스쿠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의 투표율이 46%를 기록, 헌법이 정한 기준 50%에 미달해 개표와 상관 없이 탄핵안이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국민투표 기간 동안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던 바세스쿠는 이날 투표가 끝난 뒤 "루마니아 국민이 의회의 쿠데타를 거부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출구 조사 결과 탄핵 찬성 의견이 86.9%에 달해 만약 투표율이 50%를 넘었다면 탄핵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중도 좌파 성향의 빅토르 폰타(40) 총리는 중도 우파 바세스쿠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해 내치에 간섭했다는 이유로 탄핵안을 발의해 의회 동의를 받았다. 루마니아의 정체(政體)는 대통령이 외교ㆍ국방, 총리가 행정을 책임지는 이원집정부제다. 폰타 총리는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국민투표 규정을 바꾸고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교체하는 등 초법적 수단을 동원해 유럽연합(EU) 국가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폰타 총리는 국민투표 시간을 연장하고 휴가철을 맞아 흑해 연안 휴양지에 투표소를 집중 배치하는 등 투표 독려를 위한 '꼼수'를 썼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선장 출신인 바세스쿠 대통령은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죽음(1989년)으로 공산주의가 몰락한 뒤 정계에 입문, 부쿠레슈티 시장 등을 거쳐 2004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첫번째 임기 중인 2007년 탄핵 국민투표에서 살아 남았고 2009년 재선에 성공했다. 5월 새로 취임한 폰타 총리와 갈등하면서 권력투쟁 희생양 이미지를 굳혔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사사건건 국론 분열을 조장하며 탄핵 위기를 자초했다고 평가한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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