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서 '일본 젊은이들도 위안부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29일 부산 사하구의 한 요양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황금주(93) 할머니와 마주한 일본인 야스다 히세(66)씨는 "저 누군지 모르겠어요?"라는 말만 반복하며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치매를 앓고 있는 황 할머니는 병세가 악화돼 20년 전부터 친구처럼 가깝게 지낸 야스다씨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황 할머니는 자신이 꽃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린 듯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장미 꽃다발을 야스다씨로부터 전달 받고도 기쁜 내색 조차 하지 않았다. 야스다씨는 "지난해 10월 만났을 때만 해도 '책을 빨리 보고 싶다'고 해서 책이 나오자마자 황 할머니를 찾아 한국으로 달려왔다"며 "저조차 알아보지 못할 만큼 치매가 악화돼 안타깝다"고 말끝을 흐렸다. 황 할머니는 고향이 '선팽이'라고 불리는 마을이라는 것과 친구 김학순 할머니의 이름 정도만 기억했다. 1997년 세상을 떠난 김학순 할머니는 91년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증언한 위안부 피해자다.
야스다씨는 동화작가 이규희씨가 쓴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 를 최근 일본어로 번역했다. 일본에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을 다룬 소설이 일본어로 번역 출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어판은 <꽃에게 물을 주겠니?> 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역사ㆍ여성문제 전문출판사인 나시노키샤(대표 하타유미코)에서 출판을 맡았다. 수요시위 때마다 일본대사관을 향해 팔을 걷어붙이고 욕을 퍼붓던 모습이 보도되면서 해외에서도 잘 알려진 황금주 할머니의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야스다씨는 2010년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에게 책을 선물 받아 읽은 뒤 '일본어로 번역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고 지난해 7월 원작자인 이규희씨의 승낙을 받았다. 꽃에게> 모래시계가>
야스다씨는 "현재 일본 역사 교과서는 위안부에 대해 전혀 다루지 않고 있지만 누군가는 이런 역사를 일본인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한국어 실력이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번역했다"고 말했다.
여성운동가이자 은퇴 전에는 도쿄도립고교 국어교사였던 야스다씨는 92년 일본에서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집회가 열리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듬해부터는 해마다 3~5번씩 꼬박꼬박 나눔의 집을 찾아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말동무를 자처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할 때는 할머니들 옆을 지키면서 '사죄하라', '배상하라'는 한국어를 제일 처음 배웠다. 94년에는 일본 의회 앞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다. 그는 "여성이면서 동시에 일본인으로서 이 문제에 강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내가 할 수 있는 한 계속해서 할머니들 옆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34명. 이 중 생존자는 61명이다.
부산=글·사진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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