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후 11시(현지시간) 런던올림픽 비치발리볼 첫 경기인 미국과 호주전이 열린 호스가즈 퍼레이드 경기장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미국 대표로 나선 케리 윌시 제닝스와 미스티 메이-트리너가 남색 티셔츠 상의를 입고 나온 것. 상대인 호주 대표 나탈리 쿡-탐신 힌클리 역시 흰색 셔츠 위에 비키니와 타이즈 바지를 입어 마치 '슈퍼맨' 복장을 연상케 했다. 당시 17도의 쌀쌀한 날씨에 경기에 나선 선수들이 체온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마련한 고육책인데, 이날 이들의 기묘한 복장은 경기만큼이나 이목을 끌었다.
런던올림픽 비치발리볼 경기에 정통 경기복인 비키니가 실종됐다. 일부 경기가 해가 진 뒤 열려 기온이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줄 정도로 낮아진 데다, 이번 대회부터 이슬람 문화권 선수들의 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복장 규정에 긴팔, 긴바지를 허용했기 때문. AP통신은 29일 "날씨와 상관없이 비키니를 고수하겠다던 비치발리볼 챔피언 미국 선수들도 결국 날씨에 굴복했다"고 전했다.
비치발리볼 경기는 보통 뜨거운 태양이 비추는 한 낮에 열린다. 하지만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는 적지 않은 경기를 밤에 보게 됐다. 이날 경기는 비치발리볼 인기가 높은 미국 시청자들을 배려해 올림픽 주관방송사인 NBC가 미국 현지 프라임 타임에 중계를 추진하면서 늦춰졌다. 미국과 영국은 시차가 4시간으로 경기 당시 미국 뉴욕은 오후 6시였다. 자국민들을 위한다지만 정작 선수들은 기온이라는 또 하나의 변수를 겪게 된 것이다.
대회 조직위원회의 배려(?) 덕분에 미국 선수들은 예선 다섯 경기를 모두 오후 8시~11시에 치르게 됐다. 예선 총 36경기 가운데, 야간 경기는 총 10게임으로, 미국 이외에 호주, 스위스, 브라질 등 대부분의 참가국 선수들은 최소 1경기 이상 달밤에 승부를 겨뤄야 할 판이다.
하지만 런던의 날씨는 선수들을 외면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현지 기상 예보에 따르면 "29일 소나기, 천둥, 심지어 우박이 떨어진 뒤, 8월 들어서는 평균기온이 11~19도의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를 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한 대회관계자는 "개막 후 기온이 이 정도로 떨어질 줄은 몰랐다"며 "이번 대회부터 복장 규정이 바뀐 게 다행"이라고 전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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