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압록강과 접해 있는 중국 랴오닝(遼寧)성의 성도 선양(瀋陽)에서 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3시간쯤 달려 도착한 해안가의 판진(盤錦)시엔 짙푸른 갈대 숲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아시아 최대의 습지로 두루미를 비롯해 수 많은 철새가 찾는 이 곳의 풍광은 한가로운 한국의 시골과 다를 게 없어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안쪽으로 들어서자 이런 경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소 모양의 석유 시추기 수천개가 서있었다. 사실 판진시는 중국에서 세번째로 큰 랴오허(遼河)유전을 비롯해 수광(曙光)유전, 싱룽타이(興隆台)유전, 가오성(高升)유전 등이 있는 유전 도시다. 이 때문에 랴오허로 흐르는 개천 곳곳에선 기름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곳 유전은 노천 유전이나 마찬가지여서 깊이 파 내지 않아도 되며 원유의 품질도 우수하다고 판진시는 자랑한다. 유전 덕에 판진시의 1인당 소득은 랴오닝성 가운데 으뜸에 속한다.
아쉬움이 컸다. 판진시가 우리 영토였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이곳 랴오허를 경계로 중국의 수ㆍ당과 맞섰다. 지금도 판진시와 인근 잉커우(營口)시 주변엔 재중동포가 10만명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 만약 우리 영토가 지금처럼 줄어들지 않았다면, 그래서 이곳이 계속 우리땅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산유국이 됐을 것이고 경제도 더 풍족해졌을 것이다.
판진 뿐 아니다. 판진 앞바다 보하이(渤海)만에도 석유가 넘친다. 중국 일각에선 이 곳의 석유 추정 매장량이 무려 90억톤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고구려와 발해의 멸망으로 우리는 광활한 만주 벌판만 잃은 것이 아니라 막대한 지하자원도 잃었다.
부질없는 안타까움으로 속을 끓이던 중 베이징(北京)에서 만난 한 북한 관계자의 말은 귀를 솔깃하게 했다. 북한에도 석유가 많다는 것인데 실제로 랴오닝성이나 보하이만은 북한과 인접한 곳이니 상식적으로도 북한 석유의 존재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적잖은 해외 자원 기업들이 석유를 비롯한 지하 자원 탐사활동을 북한에서 한 적이 있다. 베이징의 북한 관계자는 "자본과 기술 부족으로 못 캐내 그렇지 북한엔 석유와 지하자원이 풍부하다"며 "남한이 자원을 구하러 지구 반대편까지 쫓아 다니면서 왜 정작 북한의 자원은 외면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5년간 대통령 특사로 남미의 볼리비아를 무려 다섯 차례나 방문하는 등 '자원외교'를 했다. 이 전 의원이 주로 남미에 치중한 데 비해 이명박 정부의 또다른 실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자원외교를 했다. 그러나 지금 이명박 정부가 자원외교의 성과로 내세울 것은 많지 않다. 오히려 다이아몬드 스캔들을 비롯해 각종 잡음과 의혹만 낳았다.
중국 땅이 된 곳의 석유와 자원에 대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북한의 석유와 자원은 다르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 있다. 북한의 자원 개발은 남북한 모두에게 득이 되기도 한다. 한 대북 소식통은 지난 몇 년 간 북한산 석탄이 거의 대부분 중국으로 팔렸고 그 양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전했다. 만약 남한의 외면이 계속된다면 북한의 석유와 자원이 몽땅 중국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파격적 행보는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이젠 남한이 변할 때다.
박일근 베이징 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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