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미래기술센터 책임연구원이 이번엔 '항공우주과학계의 거목'이라며 박철(79)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전공 초빙교수를 추천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2008년 당시에도 연세가 상당했던 터라 그분이 짜 주신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리라 생각지 않았다. 2주일 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프로그램을 돌려봤는데, 깜짝 놀랐다. 고공풍력발전을 운영하는데 꼭 맞았기 때문이다.
고공풍력발전은 해상에서 띄운 연 같은 물체가 상공에서 부는 강한 바람에 움직이는 것을 이용해 발전하는 방식이다. 그때만해도 아이디어 구상 단계여서 모든 변수를 고려한 운영프로그램이 필요했는데, 나 같으면 최소 2, 3개월이 걸렸을 일을 3주 만에 해치운 주인공이 바로 박철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전공 초빙교수다.
박 교수가 한국에 온 지는 이제 10년 정도다. 그는 2003년 초빙교수 자격으로 카이스트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1964년부터 37년간 미국항공우주국(NASA) 에임스 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 기간 그는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프로젝트에도 여러 번 참여했다. 1969년 7월 20일 미국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걸음이지만 인류에겐 위대한 도약"이라는 말을 남긴 아폴로 계획에도 참여했고, 우주 왕복선 프로젝트에선 핵심 멤버로 연구했다.
지난해와 1994년엔 각각 플라즈마 및 레이저상, 열 물리상을 미국 항공우주학회로부터 수상했다. 항공우주분야 최고 학회인 이곳에서 한 과학자가 상 2개를 받은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힘든 시기가 없진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984년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5개월 가량 조사받은 일이다. 당시는 아시아가 크게 발전하는 시기였다. 그러자 전 세계 공산품 생산량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날로 줄어들었다. 미국 내에선 자국 기술을 훔쳐 아시아가 고속 성장한다고 원성이 높았다. 국회는 이 여론을 등에 업고 FBI 등에 산업스파이 조사에 나서라는 주문을 했다.
그때 사찰 대상으로 4,000여명이 뽑혔는데, 그 중에 박 교수도 들어있었던 터라 5개월 간 심문을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런 혐의가 없어 결국엔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그때를 생각하면 참 힘들었다고 그는 종종 말한다.
박 교수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근래에 하고 있는 연구주제는 우주발사체나 초음속 비행기를 만들 때 필요한 고속비행과 관련된 것이다. 끊임없이 탐구하고, 고민하는, 과학적 지식을 얻는 게 재미있다는 박 교수를 보고 있노라면, 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까마득한 후배인 내게도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노 과학자의 모습은 큰 귀감이다.
정리=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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