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경계인'이다. 재일동포 3세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 어머니는 조선 국적이어서 아버지를 따라 한국 국적을 얻었다. 하지만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계열 조선학교를 다녔다. 일본은 그가 나고 자란 몸의 고향이고, 한국은 그의 법적 조국이다. 하지만 마음의 조국은 북한(조선)이다.
프로축구 선수 정대세(28).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북한 대표로 출전, 브라질 경기 전 펑펑 흘린 눈물로 지금도 기억되는 '인민 루니'다. 그해 독일 분데스리가 2부로 이적해 현재 FC쾰른에서 뛰고 있는 그가 지난해 일본에서 낸 자서전 <정대세의 눈물> 이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됐다. 자신의 성장 과정과 북한 대표팀에서 뛰었을 때의 경험, 일본과 경기 시작 전 긴장한 나머지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북한 국가로 착각해 울었던 일 등 축구 인생을 진솔하게 담았다. 최근 소속팀 캠프 훈련을 마친 정대세를 27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정대세의>
-일본의 조선학교 중에는 축구에 강한 학교가 여럿 있다. '재일' 청소년, 청년들에게 축구는 어떤 의미인가.
"조선(북한)에서 축구가 국기(國技)라는 것이 일본의 조선학교에서 축구가 활발한 가장 큰 요인이다. 축구는 전후부터 재일동포들에 기쁨이고 긍지였다."
-2010년 월드컵에서 북한과 브라질 경기 시작 전 국가가 울려 퍼지자 눈물을 흘린 일은 지금도 화제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그 눈물은 어떤 눈물인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때까지 고생을 많이 해서 나온 눈물이다. 학생 때 축구에서 아무 성과도 내지 못했는데 축구 하는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 섰고, 또 상대가 세계 최강 브라질이어서 그때 말로 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을 느꼈다."
-정대세 선수는 3개의 조국을 갖고 있다고 책에서 말한다. 나고 자란 일본, 어머니의 모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리고 아버지의 모국이자 정 선수의 법적 국적인 한국. 그 각각은 정 선수에게 어떤 조국인가.
"일본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나라이다. 일본에서 태어났고 가족, 친척, 친구와 함께 생활해온 현실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언론을 통해 신세를 많이 진 나라다. 무엇보다도 아버지 국적이 한국이니까 내 국적도 한국이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가장 깊게 발을 딛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마음은 조선에 있다. 조선의 국기를 보았을 때, 국가를 들었을 때, 대표팀 경기에서 뛰고 있을 때, 경기를 보았을 때 역시 '우리나라'라고 느낀다."
-앞으로 일본 대표가 될 수도, 한국 대표가 될 수도, 또다시 조선 대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대표가 되고 싶은가.
"한국 대표나 일본 대표도 동경하지만 역시 조선 대표로 뛰는 것이 가장 좋다. 어릴 적 주목 못 받던 시절부터 그렇게 해와서 그런지 조선보다 강한 나라를 이기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
-한국 선수 중에서 누구를 좋아하는가. 한국 프로팀에서 뛰어 볼 생각은 없는가.
"차두리 선수와 가장 친하다. 정말 인격자여서 형처럼 여긴다. 같이 식사할 때도 아주 편하다. 조건이 좋으면 K리그에서도 뛰어보고 싶다."
-독일에서 활동하면서는 어떤 점이 좋은가. 어려운 점은 없나.
"일본에서보다는 주변의 유혹이 적으니까 축구에 집중할 수 있다. 어려운 것은 여기 선수들이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한 것이다. 최근에는 독일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돼 항의할 때도 있다. 특별한 스트레스는 없고, 경기나 훈련 중 슈팅에 실수해 호되게 꾸지람을 들을 때 늘 속으로 지지말자고 다짐한다."
-이국 생활을 하면서 '조국'을 새롭게 돌아보게 된 점은 없는가.
"독일에 와서 처음 재일동포를 여기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독일에 사는 폴란드 사람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 재일동포라는 존재가 세계 속에서는 그렇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시야가 좀더 넓어졌다고 할까. 그렇다고 조국에 대한 자긍심까지 잃은 것은 물론 아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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