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잘 가, 이젠 폴이 누나를 지켜줄 거야."
12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올레길 1코스를 걷다 인근 마을 주민 강모(46)씨에 의해 살해당한 강모(40)씨의 장례식이 27일 경기 안성시 일죽면에서 수목장으로 치러졌다. 살아생전 숲과 나무를 좋아했고 여행을 즐겼던 고인이 죽어서라도 마음껏 숲길을 거닐 수 있기를 바라서다.
가족들은 강씨의 이름표가 달린 주목나무 아래 땅을 파고 그의 뼛가루를 묻었다. 그가 기르던 반려견 폴의 유골도 며칠 뒤 함께 묻어주기로 했다. 고인의 동생 강씨(39)는 "누나가 대나무 숲에 혼자 누워 있으면서 얼마나 무서웠겠냐"며 "폴과 함께라면 누나도 덜 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식을 앞세운 노모(68)는 소리 내 울지도 못했다. 반쯤 풀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한 채 낮은 소리로 흐느끼며, 연신 말라버린 눈가를 훔쳤다. 하지만 딸의 뼛가루를 묻고 흙을 덮는 순간에는 복받친 설움을 쏟아냈다. 강씨의 어머니는 지난 11일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간다며 나간 딸이 하얀 천으로 싼 유골함에 한 줌 재로 담겨 돌아온 현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가족들은 어머니가 충격을 받을까봐 강씨 실종 이후 TV를 보지 않도록 했다. 23일 강씨 시신이 발견된 뒤에야 사고 사실을 알렸지만, 신체가 훼손됐다는 얘기는 차마 꺼내지 못했다. 강씨의 형부 정모(45)씨는 "19일이 장모님 생신이어서 15일 처제와 가족 모두가 모여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외국 유학을 준비하던 동생 강씨는 일정을 앞당겨 한국을 떠날 생각이다.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 '미안해 사랑해'(blog.naver.com/deatholle)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만들고 실종자 가족의 눈에서 본 경찰수사의 한계를 담은 글을 올렸다. 누나의 희생을 계기로 실종자 수사 제도의 문제점이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강씨는 "소송도 불사해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올레길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히겠다"며 "누나에게 좋은 동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안성=이동현기자 nan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