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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지동설과 착한 자본주의

입력
2012.07.2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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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할 때만해도 천동설에 대항하는 것은 금기였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천동설로는 달과 태양의 인력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바다의 조수(潮水)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코페르니쿠스처럼 지구가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다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결국 태양과 달, 금성 등의 움직임을 망원경으로 관찰해 이를 증명했다. 그래서 지동설이 태양계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이 된 것이다.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의 에 따르면 어떤 과학이론이 대세를 이루다 어느 순간 그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현상(Anomaly)이 나타나고, 그 시대의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패러다임으로는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이때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 새로운 이론이 출현한다. 갈릴레오가 목격한 이상현상은 조수현상이었고, 패러다임의 변화로 탄생한 새로운 이론이 지동설이었다.

하지만 갈릴레오의 지동설이 당장 그 시대의 이론으로 인정받는 것은 무리였다. 천동설을 맹신하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갈릴레오는 여전히 "철학적으로 우매하고 신학적으로 이단"이었다. 교황청 종교재판에서 그는 유죄 선고를 받는 등 박해를 받았고, 350여 년이 지난 1992년 교황청에 의해 공식 복권됐다. 과학으로써 지동설은 이미 자리를 잡았으나 종교적인 복권에는 무수한 세월이 흐른 것이다. 우리도 여전히 "태양이 떴다"고 말하지 "지구가 한 바퀴 돌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2008년 이후 미국과 유럽 등의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지구촌에서는 기존 자본주의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논의의 방향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로의 극단적인 회귀는 결코 아니다. 대개 탐욕적인 자본주의에서 착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정치와 경제,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해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는 아나톨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 개념도 이 같은 선상에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경제민주화 논쟁도 새로운 자본주의를 향한 이행 논쟁의 성격을 띄고 있다. 토마스 쿤의 이론을 빌자면,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열망이 커지는 것은 기존 자본주의 체제가 빈부격차, 불평등, 절대빈곤, 낙오자 양산 등의 이상현상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인간이 합리적,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뉴턴 경제학의 전제가 깨지면서, 경쟁을 중시하되 공생을 강조하는 다윈 경제학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는 것으로 설명한다.

지금 여당과 야당이 서로 강조점을 조금씩 달리하는 경제민주화 움직임은 기존 시스템을 뒤집자는 것이 아니라 '버전 업'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된 경제민주화 개념은 큰 틀에서 유럽식 이해관계자 중심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에 가장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오로지 주주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미국식 주주자본주의(Stockholder Capitalism)를 탈피, 주주는 물론, 기업주, 경영자, 종업원, 고객, 노동조합, 경쟁사, 하청업체, 지역주민, 소비자단체, 환경 등 기업과 이해관계에 있는 주체들을 모두 배려하는 방식이다. 안철수 원장이 "지나친 주주 중심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중심주의로 전환해야 한다"고 한 것도 이를 참고한 듯하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기 위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이 모든 경제 주체들을 아우르는 정답일 수는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 삭제를 요구하고, 일각에서 경제민주화 주장을 '포퓰리즘' 쯤으로 폄하하는 등 여전히 새 패러다임 논의를 거부하는 움직임도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갈릴레오'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면서 당리당략을 떠나 새 패러다임의 맹아(萌芽)가 살아날 수 있도록 진지하고 건강한 논의의 장을 열어가는 것이 정치권과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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