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균 나쁜 균/제시카 스나이더 색스 지음ㆍ김정은 옮김/글항아리 발행ㆍ424쪽ㆍ1만8000원
"세균과 무조건 싸울 게 아니라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미국 유명 과학잡지 <파퓰러 사이언스> 편집자를 지낸 제시카 스나이더 색스는 자신의 저서 <좋은 균 나쁜> 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균에 대한 강박과 위생 만능주의가 오히려 현대인의 병을 키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균은 나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겐 다소 의아할 터. 하지만 저자는 모든 세균을 공격하는 게 정말 질병을 극복하는 일이냐고 되레 묻는다. 좋은> 파퓰러>
면역학자들에 따르면 앨러지, 천식 같은 염증성 질환의 유행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세균과의 전쟁'이 본격화한 19세기부터 시작됐다. 고대 의학 문헌에 없던 호흡기 알레르기는 이제 서유럽과 북아메리카 전역에서 매우 흔한 질병이 됐다. 오늘날 미국 인구의 약 20%인 6,000만 명이 알레르기성 질환으로 고통 받는다. 류마티스 관절염처럼 면역세포가 건강한 세포를 공격해 앓는 자가면역질환 환자 수도 크게 늘었다. 저자는 20세기 후반 나타난 자가면역질환 80여종의 발병률이 지난 50년 동안 3,4배 증가했다고 말한다. 항생제 오남용에서 보듯 세균을 박멸의 대상으로만 본 탓이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의사들에게 항생제는 '마술탄환'과 같았다. 항생제 한 방이면 병이 싹 낳았으니 이보다 더 좋을 게 없었다. 의사 입장에선 병을 일으킨 세균이 무엇인지 시간 들여 확인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덜고, 환자 역시 치료를 단시간에 끝낼 수 있어 항생제 처방을 선호했다. 그러나 항생제가 질병을 일으킨 세균뿐 아니라 우리 몸을 보호하고, 이롭게 하는 수십 조 마리의 세균까지 무차별적으로 죽인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또 다른 문제는 내성이다. 2,3년이 지나면 해당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세균이 발생해 말썽을 피웠다. 골머리를 앓던 찰나 1951년 미국 위스콘신대에선 항생제에 저항을 갖는 세균이 100만~1,000만 마리 당 한두 마리씩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항생제 내성 세균이 나올 확률이 1000만분의 1이라면 의학계는 해결책이 간단하다고 여겼다. 서로 다른 두 항생제를 동시에 써 연타를 날리면, 1000만 분의 1 곱하기 1000만 분의 1, 그러니까 두 항생제 모두에 내성을 갖는 세균이 나올 확률은 100조 분의 1이라고 여겼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세균의 진화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날 인류는 지금껏 개발된 어떤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슈퍼박테리아 공포에 떨고 있다.
항생제 오남용은 축산업에서도 심각하다. 미국 동물보건학회에 따르면 성장 촉진, 감염 예방 등을 목적으로 미국에서 사육되는 가축에 투여하는 항생제 양은 연간 9,000톤 이상이다. 가축의 소화관, 피부 등에 항생제 내성을 지닌 세균이 생겨났고, '내성 세균'은 계란, 육류 섭취를 통해 인체에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실제 미국에선 가금류의 날고기를 만지거나 닭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에게서 분리한 장구균(창자에서 사는 세균)의 40%가 항생제 내성을 보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반면 채식주의자 65명에게서는 이런 내성이 발견되지 않았다.
저자는 책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미생물을 사냥하고 질병을 일으키는 적을 하나씩 정복하는 기쁨 속에서 '좋은 균'을 나쁜 균과 구별하려는 노력은 대체로 사라져갔다." 세균을 때려잡는데 힘써 온 의학계가 곰곰이 생각해볼 말이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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