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의 질주/오스카 피스토리우스, 지아니 메를로 지음ㆍ정미현 옮김/작은씨앗 발행ㆍ260쪽ㆍ1만3000원
런던 올림픽에서 우리는 허벅지에 의족을 단 장애인이 비장애인들과 겨루는 장면을 볼 수 있게 됐다. 다리 없는 가장 빠른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치타 다리를 본떠 만든 탄소섬유 재질의 보철 다리로 달리는 '블레이드 러너', 불가능을 뛰어넘어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 선수 중 하나가 된 그의 경기를 말이다.
피스토리우스는 지난해 9월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통해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얻었다. 400m 준결승 경기, 8번 레인 짧은 금발의 미남 청년은 비록 7위에 그쳤지만 그가 보여준 불굴의 스포츠정신은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스물넷의 질주> 는 198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선천성 기형으로 태어난 피스토리우스가 세계적인 육상선수가 되기까지의 궤적을 기술한 자서전으로 국제스포츠기자협회 회장이 공저자로 참여했다. 스물넷의>
피스토리우스는 발목부터 무릎까지 이어져 체중을 지탱하는 종아리뼈가 없을 뿐 아니라 발가락도 엄지와 검지뿐인 기형이었다. 아기의 발이 '다르다'는 것을 안 그의 부모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백방으로 뛰었으나 아기는 결국 생후 11개월 만에 두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하지만 보철 의족을 차고도 무슨 일이든 뒤로 빠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한번 겨뤄 보고 싶어 안달하는" 사고뭉치였던 그는 달리기, 수영, 크리켓, 럭비, 자동차와 오토바이 운전까지 모두 도전했다. 단 한 순간도 장애를 비관하거나 한탄하지 않는 패기와 명랑한 태도는 존경 받을 만하다.
언론에 비친 피스토리우스의 모습은 국제 무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세계 신기록을 경신한 장애인 선수일 뿐이지만, 스스로는 장애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저 남과 다르기 때문에 좀 더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평범한 한 명의 육상 선수 이야기"다. 다만 그에게는 열정과 패기가 넘쳤고 그 바탕에는 유별난 사랑과 자신감을 심어준 부모가 있었다.
"패배자는 결승선을 마지막으로 통과한 사람이 아니란다. 그냥 앉아서 쳐다보기만 할 뿐 달려 보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을 진짜 패배자라고 하는 거야!" 피스토리우스의 어머니는 아기의 다리 절단수술 몇 개월 전 이런 편지를 남기고 어른이 되어서도 수시로 읽어볼 수 있도록 간직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2002년 3월 간염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피스토리우스는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의 늪에서 그를 구해 낸 게 스포츠였다고 말한다. 책에는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곳곳에 묻어난다. 그는 자신의 팔에 어머니의 생년월일과 사망날짜를 문신으로 새겼다. 아기가 남과 다르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아버지 역시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도록 교육했고 늘 아들의 성과에 열광하며 독려했다.
스포츠광이었던 피스토리우스는 2003년 럭비 경기 중 두 명에게 동시에 태클을 당해 부상당한 후 재활 과정에서 우연히 육상을 시작한다.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 2004아테네패럴림픽에서 200m 우승을 차지하며 각종 대회를 휩쓴 그는 장애인 대회에서는 더 이상 상대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때문에 비장애인들의 올림픽에 도전하겠다는 건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2008베이징올림픽의 문을 두드린 그에게 찾아온 건 시련이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탄소섬유 소재의 의족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며 그의 참가를 불허한 것이다. 그 결정에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이 사나이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해 마침내 출전 자격을 따내기에 이른다. 기록이 못 미쳐 비록 대회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이어 열린 베이징패럴림픽에서 무려 세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그는 2012 런던올림픽을 위해 칼을 갈았다. 피스토리우스는 '치타 플렉스 풋'으로 불리는 탄소복합체 의족을 착용하고 8월 4일 육상 남자 400m와 9일 열리는 1600m 계주에서 또 한번 아름다운 도전을 한다.
피스토리우스 의족을 하는 건 어떤 기분이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의족은 그냥 내 다리이기 때문에, 다른 다리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다리가 있는 건 어떤 느낌이죠?" 한번도 쉽게 흘러간 적이 없는 인생이지만 그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끊임없이 질주한다. 책 곳곳에 담긴 낙관적인 그의 사고방식은 장애를 비관적으로만 생각하는 선입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우치게 한다. "혹시 하나님이 나에게 잃어버린 다리를 돌려받고 싶냐고 물으신다면 난 정말로 진지하게 그 대답을 고심해 봐야 할 것이다. 나는 인생이 나에게 거스름돈을 덜 준 것 같은 억울한 기분을 느끼지 않는다. 전혀. 만약 내가 정상적인 다리로 태어났다면 분명 나는 지금의 이 사람이 아닐 것이다."(148쪽)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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