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財閥)은 영어로 ‘Chaebul’이라 표기한다. 1980년대부터 학계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했지만 아직 영어사전에는 등재되어있지 않고 다국적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는 설명이 나와있다. 일찍이 외국인들도 한국의 재벌이라는 양태를 특이하게 봤던 모양이다. 사전에 재벌은 큰 세력을 가진 독점적 자본가나 기업가의 무리, 또는 일가나 친척으로 구성된 대자본가의 집단이라고 되어있다. 서양의 ‘Conglomerate’이나 ‘Konzern’ 과 유사한 개념이다.
▦그런데 재벌, 족벌(族閥), 군벌(軍閥)이라는 단어에서 보듯, 벌(閥)이라는 것이 어감이 좀 좋지 않다. 한자의 모양도 문중, 가문 등을 의미하는 문(門) 아래에 사람(人)을 창(戈)으로 찌르는 벌(伐)자가 들어가 있다. 벌은 출신ㆍ이해ㆍ인연 따위를 함께 하면서 서로 뭉치는 세력이나 집단을 일컫는다. 한때는 군벌이 국가를 지배할 때가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군부정권 시절이다. 당시 주요 요직을 군벌이 장악했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재벌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요즘 재벌이 동네북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의 재벌 때리기가 한창이다. 특히 대선 후보들이 그렇다. 안철수 원장은 재벌을 ‘초법적 기업’,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재벌조합’이라고 표현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위원은 ‘재벌개혁을 위한 순환출자 해소’를 주문했고, 같은 당 조경태 의원은 ‘재벌의 족벌 경영과 세습’을 꼬집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경제력 남용 부분’ 지적했고, 통합진보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재벌개혁의 잔다르크’를 자청했다.
▦물론 재벌이 경영권 편법 승계,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골목상권 침해, 배임 및 횡령 등의 잘못을 저지른 약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이 득표를 위해 무조건 재벌을 물고 늘어지는 행태는 볼썽사납다.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공약에 재벌개혁은 필수목록이다. 산업발전을 이끌고 일자리 창출, 세계시장 공략 등에 기여한 바가 매우 큰 재벌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재벌이 좋은 방향으로 능력을 쓸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 정치 권력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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