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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옛날보다 좋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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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옛날보다 좋은 지금

입력
2012.07.2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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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 좋았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떠올려 본 말일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런던통신 1931-1935> 이라는 책에도 '옛날이 좋았지'(The Good Old Days)라는 글이 있다. 1933년 4월 5일의 글이니 흥미롭게도 약 80년 전의 글이다. 예나 지금이나 '옛날'에 대한 향수는 인류의 오랜 믿음이라는 생각이다.

러셀의 지적도 인간의 가장 굳건한 환상 중의 하나가 과거 어느 시대에는 인류가 착하고 행복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낙원으로 시작되고, 기계가 등장했을 때는 반작용으로 중세를 찬양하고, 현재의 고통은 너무나 친숙하기에 부인할 수 없지만 과거는 이상적인 낙관주의를 그리는 데 딱 알맞은 주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좋았던 그 때 그 시절에 행복했으리라는 생각은 사실상 근거가 없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필요한 개선을 바라는 구실로 절실하게 사용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는 그 '옛날'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영화 속 약혼녀와 파리로 여행을 온 소설가는 그 곳에서 그가 동경하던 전설적인 예술가들이 만들었던 황금시대, 1920년대 파리로 시간여행을 간다. 장 콕토가 주최하는 파티를 가고,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를 만나 놀라워하고, 현실의 약혼녀와는 너무나 다르게 감수성 깊은 아드리안느를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1920년대의 그녀는 1890년대가 황금시대이다.

달리와 고갱, 모네, 로트렉이 만들었던 1890년대에 와서 그 곳을 '아름다운 시대'로 칭송하고 1920년대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아드리안느.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1890년대 작가들은 오히려 그 이전의 시대인 르네상스를 황금의 시대로 꼽는다. 현실은 늘 옛날을 동경한다는 것, 그래서 지금 이 순간과 지금의 선택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그 옛날이 아닌 '지금'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영화는 '사가현의 대단한 할머니'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60년대 히로시마 원폭으로 아버지를 잃고 유흥가에서 생계를 벌어야 하는 어머니가 힘든 살림에 아들을 사가현의 친정어머니께 보내면서 펼쳐지는, 가난하지만 밝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외할머니와 손자의 이야기이다.

이른 아침 건물 청소부로 생계를 꾸리는 할머니는 자석을 끈에 달아 허리춤에 매고 걷는다. 걸으면서도 길바닥의 고철을 모으고, 시냇물에 줄을 매달아 떠내려 오는 버려진 야채를 줍고, 반드시 깨진 두부를 반값에 산다. 신세지고 살면 안 되며, 인색하게 살면 안 되지만 절약하는 것은 멋진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할머니는 가난을 원망하는 손자에게 가난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해준다. 암울하게 가난한 집과 화기애애하게 가난한 집, 그런데 우리 집은 갑자기 가난한 게 아니라 조상대대로 가난한 것이어서 좋은 거라고 말해준다. 힘든 이야기는 밤에 하는 것이 아니며, 아무리 힘들어도 낮에 말해 버리면 별게 아니라는 지혜로운 이야기도 들려준다.

시험전날 벼락치기는 도움이 안 된다며 전기를 꺼버리는 할머니는 가난하지만 명쾌하다. 영어를 모르면 '나는 일본인입니다', 한자를 모르면' 히라가나와 가다카나로만 살겠습니다.' 역사를 모르면 '과거에 연연해 살지 않겠습니다.' 라고 적으라고 한다. 가난해서 좋은 점을 열거하며, 지금은 가난을 즐겨두라는 할머니는 바로 '지금'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옛날이 좋았지." 지금 다시 이런 말을 한다면 그건 믿음이 아니라 추억을 떠올리는 향수에 그쳐야 할 것이다. '옛날도 좋았지' 라는 의미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각박하고 힘겨운 삶으로 여겨질지라도 나의 의지로 선택하는 '지금' 보다 더 소중한 시간은 없다. 그 '옛날'은 좋았던 추억일 뿐, 비교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품어야 할 것이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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