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안에 하얀색의 가림막이 쳐졌다. 무엇을 가린 것일까. 호기심에 까치발을 들고 안을 들여다본다. 아뿔싸, 속았다. 속이 텅 비었다. 맞은 편 고개를 빼꼼히 내민 관객의 표정도 머쓱하긴 마찬가지. 뭘 기대한 걸까. 관객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그럼으로써 상상력으로 공간을 채울 수밖에 없는 작품은 이미경(46)씨의 '가림막(Fence)'이다.
보통 가림막은 도시에서 공사현장 등을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그것을 보는 행인들은 그 뒤에 새로 지어질 건물에 대한 기대 혹은 허물어진 건물에 대한 안타까움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품게 된다. 작가는 가림막 뒤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현대미술에 빗대며 관객들의 허를 찌른다.
이씨는 "전시장에 올 때 누구나 무언가를 보게 될 거란 예상을 하지만 기대와는 다를 때가 있다"며 "허무하지만 제 작업을 본 관객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 작품이 전시된 곳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아뜰리에 에르메스. 9월 13일 1인의 수상자가 발표되는 에르메스 미술상 후보 3인의 그룹전 '2012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후보작가 3인전'이 27일부터 9월 25일까지 열린다. 후보작가 이미경, 잭슨홍, 구동희씨의 작품 13점을 만날 수 있다.
사진, 조각, 설치, 영상 등 다매체를 활용하는 구동희(38)씨는 이번엔 '헬터 스켈터(helter skelter)'라는 테마로 다양한 실험을 했다. '나선형의 놀이기구' 혹은 '허둥대며 심란한 상태'를 의미하는 헬터 스켈터는 비틀스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이 노래를 1960년대 말 미국의 악명 높은 사이비교 우두머리였던 찰스 맨슨이 즐겨 들었다고 한다. 나선형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4점의 작품으로 남았다. 통로가 점점 좁아지는 미로와 윙윙대는 모기 소리의 사운드 설치, 다양한 색상의 나선형 모기향을 이어 만든 160㎝의 깔대기 모양 오브제가 인상적이다. 작가는 관객의 감각을 분산시키는 작업을 통해 기이한 시공간의 체험을 제안한다.
흔히 보는 물건인데, 뭔가 어색하다. 잭슨홍(41)씨는 우리에게 익숙한 유리세정제 분무기와 계란과 계란판 등의 사물을 실제 크기보다 1.5배 확장시켜 전시장에 놓았다. 진공청소기가 삼키는 것은 먼지가 아닌 사람을 닮은 마네킹으로, 크기뿐 아니라 상황도 낯설다. 경험과 상상의 경계에서 사물의 역동적인 순간 포착이 흥미롭다. (02)544-7722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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