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가족과 함께 제주에서 3박 4일을 보냈다. 하와이 거주민으로서 제주를 방문해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면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 10년동안 제주도 변했고, 나도 변했고, 하와이라는 새로운 비교의 준거점이 생겼으니 달리 느껴지는건 당연했다.
솔직히 제주의 도로를 달릴 때 보이는 경관은 하와이제도보다는 못했다. 하지만, 여행을 일정 기간동안 개인이 낯선 곳에서 갖는 경험의 총체라고 정의한다면, 아주 훌륭했다. 하와이에서 나고 자란 학생하나가 제주를 다녀와서 "멋진 곳이었다"고 말한 데도 공감이 갔다. 수 백 개는 됨직한 자그마한 박물관과 볼거리들, 동북아의 주요 대도시에서 한 두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섬 전체를 둘러싼 올레길, 다양하고 신선한 해산물,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는 수많은 숙박시설들의 독특함 등. 제주의 관광객이 꾸준히 느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어 보인다.
짧은 지식으로 비교해보자면, 일단 내가 사는 하와이 오아후섬이 제주보다 조금 작지만, 인구는 훨씬 많다. 게다가 오아후섬의 차량보급률은 1인당 한 대 꼴이다. 그러다보니 호놀룰루는 미국에서 통근시 교통체증이 가장 심한 도시 중 한 곳이 되었다. 반면 제주는 10년 사이 주요 도로를 많이 넓혀놓았고, 그래서인지 거의 정체를 느끼기 힘들었다. 한가지 더 눈에 띄는 것은 고층 호텔과 고급 맨션, 낡고 기울어가는 집들이 뒤섞인 지역을 제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인구가 적어서인지 비교적 정돈되고 깔끔해 보였다. 하와이주는 8개의 주요섬을 비롯, 수백개의 섬으로 구성된반면, 제주도는 8개의 유인도와 수십개의 무인도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다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제주와 하와이는 닮은 구석도 많다. 제주에서 사업을 하는 외지인을 만나보니 섬특유의 약간 배타적인 분위기도 하와이를 닮았다. 하와이의 경우,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알로하 정신' 덕분에 많은 이들이 하와이 사람들의 따스한 호의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외지인에 대한 호의가 반드시 주민들간의 관계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와이에는 워낙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섞여 살다보니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깊이 다가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철저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지인들 말로는 제주의 분위기도 하와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한가지 더하자면, 습도가 덜한 하와이가 조금 더 쾌적한 것 같긴 하지만, 두 곳의 온화한 기후도 닮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제주가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매력있는 곳으로 다가서려면 무엇을 해야할까 잠시 고민해보았다. 무엇보다도 제주를 정돈되지 않은 모습으로 개발한다면, 어느 순간엔가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길지도 모른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여기저기서 나눠주는 고층 아파트와 리조트 홍보물도 혹시 난개발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주었고, 비슷한 주제의 박물관이 두 세개씩 있어 혼동을 초래하기도 했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은 제주를 아주 다이나믹한 곳으로 만들었지만, 때때로 굳이 이런 것까지 필요할까 하는 의문부호를 던져주기도 했다.
아름다운 제주, 또 찾고 싶다. 제주는 한국인에게 있어 남방의 보물이자 도시를 떠나고 싶은 이들에게 영원한 이상향같은 곳이다. 하와이가 미국인들에게 그렇듯이. 어느 곳이든 멈춰 서서 사진을 찍으면 곧 그림이 되는 그런 곳이 우리의 일부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바람이 있다면, 제주라는 커뮤니티가 돈벌이만을 위한 경쟁보다 어떻게 하면 다시 찾고 싶은 섬으로 만들 것인가 토론하는 장이 되어야할 것 같다. 이번 방문 전에 '세계 7대경관' 선정을 위해 두었던 여러가지 무리수들, 주민의 뜻과 설득의 과정을 섣불리 뛰어넘어 버린 '해군기지' 이슈의 전개과정을 보면서 과연 제주의 거버넌스는 건강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집안이 화목해야 방문객들도 좋은 인상을 받듯이, 제주를 둘러싼 잡음들도 민주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더 많은 관광객들이 찾을 것 같다.
김장현 미국 하와이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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