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1시40분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지하 2층 전력수급 비상대책본부 종합상황실. 대형 모니터에 7,290만이란 숫자가 뜨자 상황실 팀원들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7,290만은 전국의 전력수요량(㎾)을 나타내는 수치. 전날 전력수요가 여름철 최대치(7,328만㎾)를 경신했던 터라 또 다시 최고 부하를 기록하지 않을까 잔뜩 긴장한 것이다.
게다가 이날은 서울에서 첫 폭염주의보마저 예고돼 전력거래소도 최대전력수요를 7,330만㎾까지 늘려 잡은 상태였다. 이렇게 되면 남는 전력(예비전력)이 374만㎾에 불과해 사실상 준(準) 비상상황을 의미하는 '관심단계(300만~400만㎾)' 발령이 불가피했다.
실제로 전력수요가 가장 많다는 오후 2시 무렵 예비전력은 400만㎾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달 7일 이후 처음이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구본우 한전 마케팅&운영본부장과 권우열 수요관리팀 부장 등 간부들은 모니터 앞에 모여 관심단계 발령에 따른 주요 매뉴얼을 숙의하기 시작했다.
400만㎾를 놓고 오르락내리락하던 예비전력은 다행히 오후3시를 넘어서면서 안정권으로 접어들었다. 황영기 수요관리팀 차장은 "관심단계는 예비전력이 400만㎾ 미만 상태를 20분 이상 유지해야 발령되기 때문에 오늘은 발령되지 않았다. 공급능력이 지난달에 비해 개선돼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고 안도했다.
종합상황실 팀원 11명은 모두 노란색 조끼를 착용했다. 이 조끼는 예비전력 '준비단계'(400만~500만㎾)를 상징하는데, 이달에만 조끼를 입은 적이 3차례나 된다고 한다. 국민들이 절전캠페인에 적극 동참한 덕에 최악의 사태는 피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한전은 지난해 9ㆍ15 정전 대란을 계기로 전력부하를 줄이는데 주력했다. 대표적 제도가 주간예고제와 지정기간제. 전력수요가 집중되는 시기에 사전 약정을 맺은 고객(주로 기업)이 사용량을 줄일 경우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권 부장은 "발전능력은 대폭 향상시킬 수 없어 수요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수급예측과 절감 노력을 병행해 오늘 하루에만 250만㎾가 넘는 전력수요를 감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은 안심하기 이른 상황. 국민발전소 추진, 산업계 휴가분산, 대형건물 실내온도 26도 제한 등을 통해 여름철 예비전력을 500만㎾로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목표는 빗나갔다. 남호기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산업계가 휴가에서 복귀하는 8월 중순 이후가 정말 위험하다"고 말했다. 전력당국은 특히 8월 3,4주에 예비전력이 150만㎾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도 이날 전력거래소 중앙급전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27일까지는 관심단계로 진입이 불가피하다"며 국민들에게 절전을 당부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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