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비정부기구(NGO)인 조세정의네트워크(TJN)가 전세계 조세피난처에 은닉된 한국 자금이 7,790억달러(약 893조원)라고 발표하면서 역외탈세 규모 및 수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수출입 결제대금을 부풀리는 등의 수법으로 국내자본의 불법 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4일 관세청에 따르면 역외탈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통계는 조세피난처와의 실물거래와 외환거래 규모의 괴리다. 지난해 조세회피 및 자본 불법유출 위험이 높은 62개 조세피난처와의 교역에서 외환거래 규모(3,230억달러)는 실물거래(1,614억달러)보다 무려 1,616억달러(185조원) 많았다. 이는 국내기업이나 무역업자들이 실물거래 대금을 실제보다 부풀려 빼돌렸을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관세청은 외환거래와 실물거래 규모의 괴리는 재산 해외은닉과 함께 국내에 납부해야 할 세금이 조세피난처로 불법적으로 흘러갔을 개연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특히 실물거래와 외환거래의 괴리는 외환거래 규제 완화가 본격화한 2007년(791억달러) 이후 급증했다.
국내기업의 해외 투자도 조세피난처에 집중되고 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1968년부터 올해 3월까지 조세피난처에 투자된 우리나라 자금은 35곳에 총 210억달러(약 24조원) 규모. 특히 최근 수년 간은 전체 투자액의 30%에 달한다. 투자대상지는 싱가포르가 43억달러로 가장 많았고, 이어 말레이시아와 케이만군도 각 31억달러, 버뮤다 26억달러 등이었다.
이런 조세피난처로의 투자는 대부분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이뤄진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목한 44개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국내기업의 페이퍼컴퍼니는 4,800여개로, 여기에는 30대 재벌이 세운 47개도 포함돼 있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대부분의 조세피난처는 산업기반이 별로 없는 곳으로, 여기에 설립된 회사는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비금융지주회사들"이라고 전했다. 한 조세 전문가는 "기업들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는 목적이 합법적 절세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조세회피지역에서 불법과 합법의 경계는 그리 뚜렷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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