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대국민 사과를 했다. 2008년 5월 '광우병 촛불시위'와 관련한 첫 사과를 포함해 벌써 여섯 번째다. 특히 이번은 친형 이상득 전 의원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한 측근들이 잇따라 비리 혐의로 구속된 데 대한 것이어서 어느 때보다 착잡하고 괴로웠을 만하다.
이 대통령은 우선 "가까운 주변과 집안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 국민에 심려를 끼쳤다"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리고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국민께 솔직한 심정을 밝히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판단했다"고 대국민 사과에 나선 심리적 배경도 언급했다.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월급을 기부하며 '깨끗한 정치'에 노력해 온 마당에 가까이서 비리 사건이 터져 실망과 안타까움이 컸던 듯,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그렇다고 개탄과 자책만 하고 있기에는 나라 안팎 상황이 긴박하고 과제가 엄중함을 들어 "겸허한 마음가짐과 사이후이(死而後已)의 각오로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국정 의지를 제갈량의 에 나온 '죽도록 정성을 다하겠다'는 비장한 각오에 빗댔다.
이 대통령이 겪었을 고심에 비추어 대국민 사과와 국민의 기대 수준을 견줄 이유는 없을 듯하다. 길지 않은 사과였지만, 이 대통령은 국민이 듣고 싶어하던 말은 거의 다 했다. 일찌감치 예고된 비리를 막지 못한 '관리 책임'을 언명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제 불찰"이라거나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는 말로 완곡하게 표현했다고 볼 만하다.
그런 시비보다는 역대 정권에서 거듭돼 온 측근ㆍ친인척 비리의 구조를 살펴 그 요인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것이 시급하다. 우선은 이 대통령이 다시는 사과에 나서지 않도록 철저히 주변을 살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관여 여부에 따라 일이 되고 안 되는 해묵은 관행을 털어내지 않고서는 어떤 촘촘한 감시망도 결국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과를 계기로 청와대는 물론이고 사회지도층, 나아가 국민 모두의 정치문화적 각성이 뒤따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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