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노르웨이 극우주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빅이 "노르웨이인의 순수 혈통을 더럽히고 이슬람화를 촉진하는 집권 노동당의 이민 포용 정책에 반대한다"며 저지른 테러는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다. 그는 오슬로 정부청사에서 폭탄을 터뜨린 뒤 노동당 청년 캠프지인 우퇴야섬에서 총기를 난사해 77명을 살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세계를 더 놀라게 한 것은 테러 직후 나타난 노르웨이의 대응이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는 "관용과 개방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고 국민은 오슬로 거리를 장미꽃으로 뒤덮는 추모의식으로 그 의미를 차분하게 되새겼다. 이제 테러 1주기를 맞아 노르웨이 민주주의의 지난 1년에 대한 평가작업이 나오고 있다.
스톨텐베르그 총리는 1주년 추모식에서 "노르웨이 국민은 폭탄과 총격까지 포용했다"며 "민주주의가 훼손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테러 방지를 핑계로 인권을 침해하는 정책을 도입하지도 않았다. 오슬로 거리의 폐쇄회로(CC)TV 카메라를 늘이지 않았고 경찰이 무기를 소지하려면 특별 허가를 받게 했다.
브레이빅에 대한 재판도 큰 동요 없이 진행됐다. 지난달까지 10주간 열린 재판에서 브레이빅은 희생자 가족이 앉은 방청석과 몇 미터 거리를 두고 자신의 생각을 제재 없이 밝힐 수 있었다. 변호사 카토 쉬오츠는 "국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BBC방송은 이런 풍경을 전하며 "민주주의의 약속이 지켜진 것 같다"고 전했다. 리세 크리스토페르센 노동당 대표는 "국민은 테러 때문에 기본권이 침해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속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슈피겔은 "노르웨이가 내세우는 민주주의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평가했다. 노르웨이는 브레이빅이 한때 몸 담았던 극우 정당 프로그레스파티(FrP)의 지지율이 2009년 23%에 달했던 국가다. 이 정당의 지지율은 테러 직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가 회복돼 최근 설문조사에서 22%로 나타났다. 노르웨이 우파 포퓰리즘을 전공한 역사학자 아인하르트 로렌츠는 "FrP가 조성한 외국인 혐오 분위기가 테러에 간접 책임이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최근 노르웨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점령하고 있는 집시 문제도 불길한 징조다. 오슬로에 있는 집시 캠프에 주민들이 폭죽을 터뜨리고 돌을 던지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노르웨이 국민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지쳐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철학자 헨리 사이세는 "테러 이후 노르웨이 국민에게는 반대 의견에 분노하는 것이 금기가 됐다"고 말했다. 언론인 피터 스바는 "국민은 이제 브레이빅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 하고 싶어한다"고 타임지에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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