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cry for me Argentina.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진실로 나는 그대를 떠나지 않아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거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이 노래는 1978년 초연된 뮤지컬 '에비타'에서 여주인공 에비타가 불렀던 노래다. 뮤지컬 에비타의 여주인공은 바로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에바 페론이며, 에비타는 그녀의 애칭이다.
머나먼 남미의 퍼스트레이디를 미 공연계의 거장이 주목한 이유는 그녀가 한 시기를 가장 극적으로 살아냈던 여인이며 그 인생 역정 또한 남다르기 때문이었다. 에바 페론은 시골 빈민층의 사생아로 태어나 삶의 온갖 역경을 다 겪은 후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페론주의'를 내걸어 아르헨티나 국민들로부터 '성녀'(聖女)라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누린 반면 반대편으로부터는 인기에 영합한 포퓰리즘으로 나라를 망쳤다는 공격도 받았다.
영화보다 극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는 퍼스트레이디 시절인 52년 7월 26일 34세의 젊은 나이로 척수백혈병과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에바 페론은 19년 아르헨티나의 초원지대 팜파스의 작은 마을에서 농장주였던 아버지와 가정부와의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영화배우의 꿈을 안고 15세 되던 해에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출을 감행했지만 가진 것 없는 시골 소녀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에바 페론은 성공을 위해선 자기가 가진 아름다운 몸을 이용했고 44년 당대의 실력자였던 통일장교단의 리더 후안 페론을 만나게 된다.
당시 노동부장관이었던 후안 페론을 만나 46년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든 에바 페론은 확신에 찬 연설과 미모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에비타라는 애칭이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알려진 것도 이 무렵이었고, 에바 페론의 인기 덕에 후안 페론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퍼스트레이디가 된 그는 남편을 설득해 국가사회주의를 본뜬 '페론주의'를 내걸어 빈민과 노동자 우대정책을 실시했다. 이후 9년 동안 헌신적인 삶을 살던 그녀는 아르헨티나의 경제사정이 악화하면서 병을 얻어 쓰러졌고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그녀의 장례식은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큰 국장으로 한 달간 성대히 치러졌다. 미라로 만들어진 그녀의 시신은 정권이 바뀐 후 이국을 떠도는 우여곡절을 겪다가 사후 24년이 지난 후에야 레콜레타 공동묘지의 가족묘역에 안장됐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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