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으로 촉발된 은행에 대한 불신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기준이 모호한 지점장 전결금리 규정을 이용해 부당하게 높은 대출금리를 적용해 온 사실도 적발됐다. 게다가 학력에 따라 대출금리를 차별 적용하는 등 은행들의 어이없는 영업 관행의 속살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은행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대규모 소송 등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전망이다.
23일 감사원이 2009~11년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의 금융기관 감독사항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은행들은 대출 가산금리를 임의로 인상해 2008년 10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3년간 무려 20조4,000억원의 추가 이익을 거둬들였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행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시장금리를 계속 낮췄지만,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신설 혹은 인상하는 방법으로 대출금리를 높게 유지한 것이다.
한국은행은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10월부터 기준금리를 연 5.25%에서 점진적으로 인하 이듬해 2월에는 2.00%까지 인하했다. CD금리도 2008년 10월 연 6.03%에서 2009년 4월 2.42%로, 3.61%포인트 하락했다. 이에 따라 CD금리와 연동되는 가계ㆍ기업의 대출금리도 당연히 따라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 기간 가산금리를 1.76%에서 2.98%로 1.22%포인트 올려 이자 수익을 유지했다.
은행들은 가산금리 인상을 위해 갖가지 구실을 동원했다. 유동성프리미엄(0.5~1.2%)을 신설하거나 소액대출에 대한 가산금리(1%)를 신설하고 연체실적이 있는 차주에 대해 벌칙금리(2%)를 부과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금융위기 이전(2003년 1월~2008년 9월)과 이후(2008년 10월~2011년 12월)의 대출 가산금리를 비교해 볼 때, 기업과 가계 부문의 이자부담은 각각 16조6,000억원, 3조8,000억원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은행들의 어이없는 영업행태는 이뿐이 아니다. 국민은행의 대출계약서 조작(한국일보 23일자 10면 보도)에 이어 신한은행은 학력에 따라 대출금리를 차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신한은행은 고졸 이하 대출자와 석ㆍ박사 학위자의 신용평점을 달리해 고졸 이하의 신청자에게는 대출을 해주지 않거나 대출금리를 높였다. 신한은행이 2008~2011년 동안 개인신용대출을 거절한 4만4,368명 가운데 1만4,138명(31.9%)이 학력이 낮았다. 또 이 기간 15만1,648건의 개인신용대출 가운데 7만3,796명(48.7%)이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이자를 17억원을 더 내야 했다.
은행들은 또 대출금리를 높이기 위해 개인신용평가사들의 단기연체 정보까지 마구잡이로 사용했다. 신평사들이 원리금 납입이 5영업일만 늦게 들어와도 연체로 잡는 특성을 대출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불과 5~6일의 연체에도 신용등급이 떨어지면서 대출금리는 최대 3.2%포인트까지 높아졌다. 닷새 연체로 신용등급이 하락한 사람이 신용 원상회복까지는 평균 5개월이 걸렸다. 신용등급 회복사유가 생겼는데도 이를 은행연합회에 늦게 보고하거나 아예 알리지 않은 사례도 875건이나 적발됐다. 감사원은 “5영업일 이상 단기 연체 건이 90일 이상 장기연체로 변하는 비율은 8.9%에 불과한데도 7개 시중은행은 대출자 3,649명 가운데 777명이 단기연체를 이유로 대출금리가 높아졌다”고 밝혔다.
횡포에 가까운 은행들의 행각은 금융감독당국의 비호로 가능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일방적인 가산금리로 은행들이 추가 이익을 거두고 있었음에도 금융감독당국은 수익성 개선을 요구했으며, 신한은행의 ‘학력차별 신용평가 모델’도 금융감독원의 승인을 받은 것이다. 감사원은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 소홀이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꼬집었다.
은행 금리에 대한 불신은 대규모 소송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CD금리 조작 의혹에 대해 금융소비자연맹이 집단 소송을 예고한 데 이어, 최근 설립된 금융소비자원의 조남희 대표는 “CD금리 왜곡으로 최근 2년반 동안 은행이 거둔 추가 수익은 4조원이 넘는다”며 “(금소연과 별도로) 피해자들을 모아 집단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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