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는 것도, 농사를 짓는 것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똑똑해서 혼자 돈을 버는 것이 아니거든요. 노동자들이, 일꾼들이 일을 해서 함께 버는 것이지요. 서로 엉켜있고 같이 가야 하는 사회인데 지금 사회가 상당히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 자녀나 친인척들에게만 줄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0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의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에 121호 회원으로 등록한 배준식(59)씨는 자신의 나눔 철학에 대해 이 같이 이야기했다. 전북 김제에서 인삼 재배를 하는 배씨는 아너 소사이어티 최초의 농부 회원이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부유층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게 하자는 목적으로 공동모금회가 2008년 1월 결성했다. 공동모금회에 1억원 이상 기부했거나 5년 이내 1억원 이상 기부를 약정하면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대부분이 기업인들이며, 농부는 배씨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배씨는 이미 5,000만원 가량을 공동모금회에 기부했고, 내년까지 1억원 기부를 채우기로 약정했다.
사실 공동모금회에 기부한 액수 외에 배씨가 지금까지 이곳 저곳에 기부해온 금액을 합치면 4억~5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충남 금산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무일푼으로 김제로 건너와 20여년 전 인삼 재배를 시작한 그는 인삼 농사를 시작할 즈음 아들의 저금통을 깨서 7만원을 처음 기부했다. 이후 생활이 어려운 독거노인들에게 매년 연탄 2만장을 지원하고, 지역민을 위해 이동도서차량과 신간을 구입해 지원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백두산 여행 중 구걸하는 북한 어린이를 보고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을 위해 1억6,000만원 상당의 쌀(80㎏ 1,000가마)을 구입해 북에 전달했다. 지역 새마을 지회장으로 활동했던 때에는 자신의 인삼 재배 노하우를 지역 농업인에게 전수하며 지역농가의 소득증대에도 일조했다.
그는 "매해 인삼재배로 얻는 수익이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다"며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서 기부를 하는 것은 아니며, 적자가 나더라도 꼭 약정(1억원 기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배씨를 포함해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회원은 올해 들어 36명이다. 실명 회원 121명과 익명회원 18명을 포함해 모두 139명으로 늘어났다. 배씨는 전북지역 첫 회원이며, 배씨의 가입으로 전국 16개 시ㆍ도가 모두 1명 이상의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을 갖게 됐다고 공동모금회는 설명했다. 모금회 관계자는 "지금까지 1억원 기부약정을 어긴 회원은 한 명도 없었으며, 오히려 약정 기간을 단축해서 기부 약속을 지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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