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2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일부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DTI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불합리한 관행을 고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애써 '기본 틀'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그간 DTI가 국내 주택시장의 과열을 막기 위한 성역처럼 여겨져 온 핵심 규제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가볍지 않아 보인다.
기존 DTI 규제는 소득에 맞춰 대출가능 규모를 정한다. 즉, 금융회사의 건전성 유지를 위해 대출자의 근로소득, 이자소득, 임대소득, 사업소득 등을 따져 대출한도를 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수백 억원대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을 보유한 거액자산가라도 일정 소득이 없으면 큰 금액의 대출을 받기가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고정 소득이 갑자기 끊긴 은퇴자도 사정은 비슷하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팀장은 "은퇴자의 경우 자산 리모델링 과정에서 보유 아파트의 크기를 줄여 임대소득을 얻기 위한 오피스텔이나 소형 아파트를 구입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대출을 받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추경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은행이 소득이나 자산과 관련한 사항을 확인할 때 차주(借主ㆍ대출자)의 특성이 고려되지 못할 때가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고 개선 배경을 설명했다.
때문에 정부의 보완책은 실수요자 특성에 맞춰 DTI를 탄력 조정하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려받은 자산이 많거나 과거 사업 등을 통해 충분한 자산을 갖춘 은퇴자 등이 일정한 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필요한 만큼 대출을 못 받는 문제를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김태현 금융위 금융정책과장은 "기존 DTI 제도에선 대출자가 퇴직 등으로 소득이 줄어든 경우 대출 만기연장 등이 불리해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정 수준의 자산을 갖춘 사람에겐 소득이 없더라도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DTI 규제가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월별, 계절별 소득 편차로 상환능력 산출이 어려웠던 일부 자영업자도 DTI 완화 혜택을 볼 전망이다. DTI 도입 목적이 금융회사의 건전성 유지에 있는 만큼,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자산을 가진 대출자의 경우 소득 유무를 따지지 않고 대출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하지만 청와대 토론회에서 DTI 규제 완화가 언급되자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김태현 과장은 "DTI 제도로 소득을 확인하는 절차, 방법, 내용 등을 살펴보겠지만 구체적인 방향까지 정해진 건 아니다"면서 "실제로 얼마나 불합리한 부분이 있는지 의견을 듣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DTI 규제를 대폭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도 임대료나 이자 수입 등을 DTI에 반영하는데, 앞으로 자산가 등을 대상으로 소득을 추가 인정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른 시간 내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후속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