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월에 시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바나나가 무지 귀한 과일이라 그거 구경하다 그만 엄마 손을 놓쳤던 것이다. 극심한 공포 속 나는 사람들에 채여 어디론가 자꾸 걸어 나갔고 엄마, 엄마 울며불며 두리번거리는데 누군가 내 손목을 잡았다.
엄마 찾아줄 테니까 아저씨 따라 가자. 목소리는 친절했으나 이상하지, 그 자리에서 몸이 돌처럼 굳어서는 발이 떼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내 손목을 움켜쥔 강력한 힘의 공포, 그렇게 얼마간을 버텼을까. 훗날 그것이 야상 점퍼라는 걸 알았고, 그 옷을 입은 아저씨는 경찰과 함께 날 발견한 엄마를 보자마자 쏜살같이 달아나버렸다.
엄마를 찾아준다더니 정작 엄마 앞에서 도망치는 마음 뒤에 무엇을 숨겼던 거냔 말이지. 한동안 저승사자랍시고 내가 그린 전부는 죄다 그 아저씨이곤 했다. 나는 그렇게 악마를 보았던 걸까. 통영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초등학생 아름이가 등굣길에 사라졌다는 뉴스를 접한 지 일주일 만에 범인이 잡혔다는 속보를 접했다.
브이 자를 그리며 환히 웃는 사진 속 아이는 주검인 채였고, 정작 우리에게 돌아온 건 성폭력 전과가 있는 사십대의 고물 줍는 아저씨였다. 헌법이 알아서 잘하는지는 내 모르겠다만 어쨌든 어린이를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에 한해서만은 함무라비 법전 속 탈리오의 법칙에 입각하여 다스리면 안 되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리가 아름이의 부모라면 가만있었겠냐고!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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