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를 완치할 수 있다고 말하는 날도 머지않았다."
이달 19일 프랑수아 바레 시누스 박사는 과학학술지 <네이처> 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에 재직하던 1983년 에이즈 바이러스(HIV)를 처음 발견한 공로로 20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최고 권위자다. 네이처>
시누스 박사가 낙관적인 발언을 한 근거는 에이즈에 감염됐다가 완치 단계에 있는 미국인 티머시 브라운이다. '베를린 환자'로 불리는 브라운은 1995년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어 발병한 백혈병 치료를 위해 2007년 독일 베를린에서 골수줄기세포를 이식 받았다. 백혈병은 제 기능을 못하는 미성숙 백혈구를 비정상적으로 많이 만들어 면역력을 떨어트리는 질병인데, 이식한 골수줄기세포는 적혈구, 백혈구 등 정상 세포로 분화해 백혈병을 치료한다.
전문가들은 골수줄기세포 안에 있던 CCR5 유전자 돌연변이가 에이즈 완치에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CCR5 유전자가 만든 단백질은 백혈구 표면에 있으면서 HIV가 달라붙게 해 백혈구를 파괴한다. 그런데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만든 단백질은 HIV가 인식하지 못한다. HIV 감염을 막아 에이즈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캘리포니아대 교수인 스티븐 딕스는 "브라운은 지난 5년간 에이즈 치료를 받지 않았는데도 몸에서 HIV가 발견되지 않는다"며 "엄격한 과학적 기준에서 완치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명환 건국대 생명과학과 교수도 "베를린 환자 사례는 에이즈 정복이 가능함을 보여준다"고 했다.
다만 다른 사람의 골수줄기세포를 이식 받을 때 나타나는 면역거부반응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면역거부반응은 이식 받은 세포, 장기를 외부의 침입자로 여겨 몸 안의 면역세포가 공격해 괴사시키는 작용이다.
연구진의 낙관처럼 실제 에이즈의 발병률과 사망률은 꾸준히 줄고 있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이 이달 18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에이즈로 전 세계에서 17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 1월 기준 대전광역시 전체 인구수(151만 명)보다 많다. 신규 감염자 수는 250만 명이었다. 사망자와 신규 감염자 수 모두 전년보다 각각 10%씩 줄어든 수치다.
특히 임신부에서 태아로 HIV가 직접 옮는 수직감염으로 인한 감염자 수는 33만 명으로, 2003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UNAIDS는 "그간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못했던 빈곤국가에서 에이즈에 대한 지원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이 보고서 서문에 "지난 10년간 에이즈는 사형선고에서 만성질환으로 그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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