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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임상역사가 이영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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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임상역사가 이영남씨

입력
2012.07.2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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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남(44)은 국내에서 한 명뿐인 임상역사가이다. 그가 2008년에 이 영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중소기업 무역부에서 2년간 근무하다가 역사가 좋아서 서강대 대학원을 갔고 거기서 1945~46년의 적산기업 노동자 소유를 연구해서 99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정부 국가기록원에 취직해서 청소년기에 꿈꾸던 공무원도 되었다. 2005년에는 박사학위도 받았다. 강의도 나갔다. 가족도 단란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는 늘 알 수 없는 불안이 있었다. 역사학도라서 그는 고민도 역사학으로 했다. 자기의 개인사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동무'들과 함께 개인사를 이야기하고 들어주고 글로 쓰면서 마침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이르면서 그는 그 과정을 임상역사라고 이름 붙이고 대중에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올 초 국가기록원도 퇴직하고 풀무학교 전공부(대안대학)와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내가 쓰는 나의 역사'진행에 매진하고 있다. 임상역사란 무엇일까.

_역사가는 알겠는데 임상은 왜 붙인 거예요?

"사람들의 내면을 보여주는 역사를 쓴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붙였습니다."

­_심리상담가와 자서전대필가 가운데쯤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어요?

"심리상담가는 치유를 목표로 가는 사람이고 저는 물론 치유가 되면 좋지만 그게 목표는 아니고 역사를 쓰자는 겁니다. 자서전은 정치를 하거나 성공한 사람이 내가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건 정반대입니다. 내가 어떻게 좌절을 했는지 좌절을 해서 어떤 가치를 발견했는지 그게 현재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발견하고 그걸 글로 쓰게 돕는 겁니다."

_어떻게 이걸 하게 됐어요?

"2005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으니까 전문적인 역사가인데 한국현대사의 흐름은 이해할 수 있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결혼생활 잘하고, 직장생활 잘하고, 대학 강의까지 나가고. 문제될 것이 없는데 고통스러운 마음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스무살 무렵에는 강원도 고성의 가난한 어촌에서 살다가 서울에 처음 올라와 자리잡는 과정이 힘든가보다 했습니다. 박사학위를 따고도 그럴 때는 마흔을 넘기느라 그런가 했습니다. 그러다가 프랑스 철학자인 미셸 푸코(1926~1984)를 읽게 되었습니다. 푸코는 굉장한 엘리트이면서도 동성애자로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의 저작을 읽고 특히 를 읽으면서 이건 자기의 고통스런 삶을 이해하려고 쓴 아주 지적인 역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무렵 소설가 김형경의 을 보면서 문인은 고통을 문인다운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자나 문인이 아닌 역사가는 역사서술로 자기를 이해하는 작업을 할 수 있겠구나. 내가 어떻게 형성되었기에 이런 고민을 하는가 밝혀보고 싶었습니다. 심리학 책도 읽고 푸코도 연구하면서 2008년에 내면에 초점을 맞춘 역사쓰기를 함께 하자고 사람들을 모집했습니다."

_그래서 문제를 알게 됐습니까?

"제가 관계맺는 방식이 늘 힘들었습니다. 직장에서 권위를 가진 남자들과 관계맺기라든가 한국의 직장문화가 갖는, 어디에 줄을 선다거나 술자리 그런 게 굉장히 고통스러웠습니다. 반면 여성들과의 관계는 잘 맺었습니다. 이런 건 아버지나 엄마와의 관계로 분석하는데 문제는 여자들과 관계를 잘 맺으면서도 이게 고통스러웠습니다. 역사쓰기를 하면서 엄마가 장남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집착을 갖는 것에 부담을 가져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_일단 사람들이 오면 어떻게 지도합니까?

"3명에서 8명 정도로 구성을 합니다. 역사쓰기는 12주로 진행됩니다. 그 동안 글을 서너편 쓰고 그 글을 들으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구성원을 동무라고 부릅니다. 동무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결국에는 이 사람 스스로는 못 보는 매력을 찾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대화를 나눌 때는 조언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지지해주고 궁금한 것을 물으라고 합니다. 낯선 사람끼리도 하고 알던 사람끼리도 하는데 낯 모르는 사람끼리 하면 곧장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어떤 경우에나 이상할 정도로 공동체 정신이 잘 발휘됩니다."

_가장 먼저 쓰는 글은 뭔가요?

"연대기입니다. 자기가 살아온 것을 연도순으로 정리하는 것인데 연보와 달리 감정이 섞입니다. 다섯 살 때 미끄럼틀에서 떨어졌는데 엄마가 지켜보고만 있었다, 100점을 맞아서 달려왔는데 엄마는 관심 없이 나중에 보자고 했다. 사소한 일로 보여서 배우자한테도 말을 하지 않았던 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역사는 관점이 중요한데 임상역사도 관점을 찾으려면 내가 살면서 일어난 사건 중에 어느 사건에 어느 비중을 주는지가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각자가 써온 연대기를 들고 이야기를 하면서 매력을 찾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_매력이요?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보면 끌리게 마련인데요. 끌리게 되는 것은 우연히 생긴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것입니다. 지구에 중력이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다 매력이 있습니다."

_역사라는 건 객관적인 건데 왜 굳이 매력을 찾는 거지요?

"역사는 절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역사가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거대한 환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큰 정신은 일반적인 객관화를 부정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역사란 내가 생각하는 주관적인 역사일 뿐입니다. 임상역사는 독특한 삶을 내 방식으로 표현하는 역사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나 자신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걸 찾아내는 과정으로 매력을 찾는 겁니다. 매력은 표현되는 것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더 깊숙한 것이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은 그걸 무의식이라고 표현하고 저는 토양이라고 말합니다. 꽃이 매력이라면 토양은 바로 그걸 가능하게 한, 한사람의 삶이 가능하게 한 동력 같은 것입니다."

_매력은 특징이나 장점과는 다른가요?

"그건 사회화된 관점이고요. 매력은 사회화된 게 아니고요. 그냥 끌리는 겁니다. 심리학에서는 콤플렉스를 이야기합니다. 한 인간의 감정이 있고 그게 복합돼 있다고 보고 그걸 찾아내면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데 저는 매력의 토양을 찾고 그걸 잘 가꾸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우울증이라는 것도 자기 매력을 긍정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고 사람들이 숱한 철학자 가운데 푸코에게 끌리는 것도 실은 매력 때문입니다. 주관적인 것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것만 다루는 것이 학문의 세계라고 말하는 시대에 그는 자기가 겪은 일을 학문으로 끌고 와 그것을 탐구하고 새로운 학문의 길을 열었습니다. 보통 50대가 되면 과거의 업적을 추수하며 사는데 그는 그 나이에 새로운 연구로 나아갔고요."

_그건 결국 장점 아닌가요?

"장점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매력은 오히려 사소하고 자신에게는 아주 자연스런 일상이라 남들은 알아채지만 스스로는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일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세상에서는 쓸모를 인정하지 않아도 자기는 잘하고 좋아하는 게 매력입니다. 그 매력을 만든 토양이 바로 내면의 힘입니다. 사람이 자기 삶을 성찰하고 내가 어떤 힘으로 살아왔는가 인정하고 긍정하려면 매력을 알아야 합니다."

_심리학자가 아니라 현대사를 아는 역사가라서 내면을 더 많이 끌어내는 게 있어요?

"그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통은 절대적으로 개인의 것이고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일반화시키면 찾을 수 없고 내가 어떻게 독특하게 살아왔는지를 밝힐 수 없습니다. 80년대 광주의 체험도 그 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저마다 다른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걸 전부 광주로만 치환시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을 치유할 수가 없습니다. 독특한 상황에서 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명분도 없는 자기만의 고통이 있습니다. 김근태씨가 남영동에서 고문을 받았을 때 고문 받은 사람은 다 그래, 이해할 수 있어 그러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 분과 이런 작업을 했다면 그 분은 사회적으로 발언한 것과는 다른 고통을 이야기했을 겁니다. 그걸 찾아내기 위해서도 역사적 사회적 흐름은 무시해야 합니다. 그걸 찾아낸 다음에 삶의 역정에서 그 고통이 어떻게 의미를 갖는지를 찾아내는 겁니다. 사회적 흐름 속에 개인을 배치시켜온 것이 거시사(巨視史)라면 미시사(微視史)는 그걸 하지 말자는 겁니다. 미시사의 정신에서 태어난 임상역사는 더구나 그렇습니다."

_매력을 이야기하다가 왜 고통을 이야기 하지요?

"사람의 에너지가 고통 속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걸 꽉 쥐고 있기 때문에. 그걸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걸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서. 엄마가 자살을 해서 그걸 아이가 알렸습니다. 그 이후 아이는 위탁가정을 뛰쳐나와 알콜중독 노숙인이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엄마에 대한 분노가 꽉 차 있습니다. 그에게 그날 상황을 묻자 엄마가 삼촌더러 나를 데리고 나가게 됐는데 삼촌이 그렇게 못했다, 그래서 엄마의 죽음을 보게 됐다. 그럼 엄마가 왜 죽는 순간에도 자식을 삼촌한테 데리고 나가라고 부탁했을까. '그건 자식을 사랑했기 때문이겠지요.' '엄마?무책임하게 당신을 버린 사람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했던 사람이군요.' 엄마가 나를 고통스럽게 한 그 순간이 바로 엄마가 어떻게 나를 사랑했는지 알려주는 순간이 됩니다. 그런 엄마를 이야기하고 싶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책임하게 자식을 버린 여자로만 봅니다. 그러나 뭔가 다른 의미를 알기에 그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지 않고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게 된 겁니다. 그를 버티게 해준 힘은 가슴깊이 간직해온 고통에 담겨있습니다."

_공동으로 하는 것은 매력을 남들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의미인가요?

"인간이란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형성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번 모이면 세 시간씩 대화를 나눕니다. 그러면 상대방의 매력에 대한 감이 생깁니다. 그렇게 매력을 서로 이야기해주게 되면 거기서 스스로 뭔가를 끌어올 수 있습니다. 전문가의 심리분석도 받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종합해서 자기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자기역사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을 불러 자기가 쓴 역사를 들려주는 걸로 맺습니다."

_제자를 길러 임상역사를 확산시키고 싶겠어요?

"사람마다 살아온 삶이 다 다르잖아요. 임상역사는 제 경험으로 만들어진 거고 다른 경험을 한 사람은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겠지요.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절반 정도는 그만 두시는데 이 분들이 좋아할 다양한 역사 쓰는 방식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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