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의 불똥이 4,000조원 넘는 파생상품시장으로까지 튀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까지 세계 파생상품시장 거래량 1위였지만, 만일 CD 금리 조작이 확인되면 대외신인도 하락이 불가피해 외국인들이 시장에서 발을 빼거나 소송을 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미 영국은 런던은행간 금리(LIBOR) 조작 사태로 대규모 국제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CD 금리를 기초로 한 파생상품 규모는 3월 말 현재 약 4,500조원에 달한다. 가계대출 잔액 중 CD 연동대출이 300조원 남짓인 걸 감안하면 15배나 되는 천문학적 액수다.
국내 파생상품시장은 이달 들어 13년 만에 세계 1위 자리를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에 내줬다. 유럽 재정위기가 촉발한 불확실성으로 거래가 실종되면서 최근 1년 새 거래량이 35%나 급감한 탓이다. 설상가상 CD 금리 담합 의혹이 불거져 악재가 더한 형국이다.
파생상품 중 CD 금리를 변동금리로 이용하는 원화이자율스와프(IRS)의 경우 벌써 시장에서 부정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 3년 IRS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조사 이전 연 2.86%에서 19일 장중 0.24%포인트나 급락했다가 2.75%에 마감했다. 그간 CD 금리가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변동금리를 받고 고정금리를 지급한 투자자들이 CD 금리 담합 논란이 확산되면서 CD 금리가 떨어지자 손해를 감수하고 팔아 치웠기(손절매) 때문이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증권사들의 CD 금리 고시 거부 움직임이 현실화하는 경우에도 파생상품시장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선도계약이나 옵션계약 같은 파생상품은 매일 가격이 바뀌기 때문에 CD 금리가 하루만 고시가 안돼도 결제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CD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의 청산이나 조기상환 가능성도 제기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파생상품의 평균 만기가 10년인데다 심지어 20년짜리도 있기 때문에 만약 CD 금리 담합이 사실로 확인되거나 CD 금리가 논란 끝에 폐기된다면 모든 물량을 다시 계약하거나 청산절차를 밟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 파생상품시장에 대한 신뢰도 함께 추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CD 금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금리가 생긴다 하더라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건 아니다. 기초자산이 바뀌는 상황에 대한 대처규정이 없는 파생상품도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파생상품을 대거 청산하는 건 그나마 낫다"며 "기초자산이 바뀔 때의 청산절차를 명시하지 않은 상품은 리보 조작 사태처럼 국제적인 법률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나친 확대해석은 금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IRS의 규모는 어디까지나 명목 원금이고 거래되는 시장규모는 훨씬 작다"며 "만기 10년 이상 파생상품 중 실제 문제가 될 수 있는 건 최대 원금의 10% 정도"라고 말했다. 아울러 "설사 CD 금리가 없어지더라도 대체가격을 결정하는 방법이 계약서에 있고, 쌍방이 합의를 통해 재계약을 하거나 청산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제소송은 아주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반면 증권사 관계자는 "CD 금리의 추가 하락 가능성 탓에 시장이 크게 출렁이고 있다"며 "불똥이 어디로 또 얼마까지 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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