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관저인 아포스톨릭궁 3층의 성 베드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침실에서 매일 오전 6시30분에서 6시45분 사이에 눈을 뜬다. 목욕과 면도를 하고 개인 예배당으로 가는 7시30분께 그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8시30분 개인 비서인 게오르그 갠스바인 신부를 비롯한 보좌관들과 아침을 먹는다. 교황은 카페인을 뺀 커피, 버터와 잼을 바른 빵을 즐긴다. 가끔 타르트(과일을 얹은 파이) 한 조각을 곁들인다.
전세계 10억명의 신도를 둔 가톨릭의 수장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영접받는 교황의 사생활이 이처럼 상세히 드러난 것은 최근 몇 개월 사이의 일이다. 미국 주재 바티칸 대사가 교황에게 보낸 서한을 이탈리아 언론이 입수해 보도한 1월을 기점으로 바티칸의 속사정을 들추는 민감한 내부 문건이 속속 유출된 것이다.
수백년간 시칠리아 마피아에 버금가는 폐쇄적 조직문화를 유지해온 바티칸에서 흘러나온 문건들은 성직자들의 정치적 음모와 암투, 횡령과 돈세탁 등 지극히 세속적인 이면을 폭로, 충격과 호기심을 자아냈다. 바티칸을 성(聖)이 아닌 속(俗)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시도도 자연스레 늘고 있다.
가장 정치적인 기관 국무성
바티칸 기구는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단행한 조직 개편을 통해 행정기구인 9개의 성(省), 교회법을 다루는 3개의 법원, 자문기구 역할을 하는 11개의 평의회로 구성된 현 체제가 확립됐다. 국무성은 이중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진 기구로, 다른 성과 평의회의 상위에 있다. 국무성 수장인 국무장관은 교황 바로 다음으로 외빈을 접견하고, 교황의 위임을 받아 성명에 서명한다. 현 국무장관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 유출된 문건으로 드러난 교황청 내부 암투의 핵심 인물이다.
국무성은 여느 국가의 외무부와 내무부 기능을 겸하는 기구다. 제1분과는 전세계 교회 및 바티칸 내각을 관할하고 제2분과는 외교 관계를 조율한다. 1분과장 소시티투토(Sostituto)와 2분과장 세그레타리오(Segretario)는 대외적으로 각각 내무장관, 외무장관으로 불리지만 정책 결정 권한은 국무장관, 최종적으로는 교황이 쥐고 있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
공식적인 정보기관은 없지만 바티칸의 정보 수집 능력은 전설적인 평판을 얻고 있다. 외교가와 언론은 "교황과 국무장관은 지구상 최고의 정보를 가진 정치가"로 평가한다. 교황과 갈등 관계였던 아돌프 히틀러는 바티칸이 수많은 신부를 통해 거의 모든 나라에서 첩보망을 운영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바티칸의 정보력은 일차적으로 각국 주재 대사에게서 나온다. 대부분 신부인 이들은 신학적 지식을 토대로 주재국의 역사, 문화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갖고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감정이입 능력은 특히 강점으로 꼽힌다. (가톨릭 고유 의식인 고해성사가 고급정보의 원천이라는 분석도 있다) 바티칸은 1701년 외교관 아카데미를 설립, 양질의 외교관을 안정적으로 배출하고 있다.
현장성 있는 정보는 주교들에게서 나온다. 주교는 적어도 5년에 한 번씩 바티칸에 와서 자신이 사목하고 있는 지역의 종교ㆍ사회적 갈등에 대해 보고해야 한다. 국무성은 아드 리미나(Ad limina)라 불리는 방문보고제를 통해 세계 정치상황 변화에 신속히 대처한다. 오지까지 파견된 선교사들은 세속 국가들이 보유할 수 없는 바티칸만의 인적재산이다.
교황국의 필요악 바티칸은행
교황 바오로 6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의 교회개혁 결정에 따라 바티칸 조직을 대폭 늘렸을 때 이로 인한 막대한 적자를 메운 기관이 바티칸은행(IOR)이다. 바티칸에게 IOR는 든든한 자금줄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오명이기도 하다. 특히 폴 마르싱커스 대주교가 행장으로 있던 시기(1971~83)에 IOR는 마피아가 연루된 불법 돈세탁의 온상으로 낙인 찍혔다. 5월 에토레 고티 테데시 은행장의 해임 배경에 베르토네 국무장관을 위시한 고위층의 돈줄 확보 경쟁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문건이 나와 IOR는 다시 추문에 오르고 있다.
IOR의 전신은 1887년 교황 레오 13세가 설립했다. 이탈리아 통일 세력에 교회국가 로마를 통째로 빼앗긴 교황이 바티칸의 재정능력을 유지하려고 만든 것이다. 1929년 이탈리아로부터 겨우 교황국 영토를 얻어냈지만 여전히 수세에 있던 바티칸은 2차대전 와중인 1942년 IOR를 외부 통제를 받지 않는 독립기구로 만든다. 불안한 정세에서 자금원을 노출하지 않으려던 당시의 전략적 판단이 부패의 단초가 된 셈이다.
IOR은 수도원, 자선단체 등 가톨릭 종교단체의 계좌와 금고를 관리한다. 개인 고객은 받지 않는다. IOR의 바티칸 지점에는 라틴어 안내문이 나오는 세계 유일의 현금 자동 입출금기가 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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