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백화점 등 계열 유통매장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구매하면서 억지로 제3의 계열사를 끼워 넣어 수십억원의 '통행세'를 챙기도록 한 건 재벌의 전형적인 악습이다. 롯데 측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어제 시정명령과 6억여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리자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한 사안"이라며 반발했지만 공감하기 어렵다. 경쟁력은 지키되, 총수 일가의 전횡 극복이 시급한 우리 대기업집단의 혁신을 위해서라도 엄정히 처리함이 마땅하다.
공정위에 따르면 롯데그룹 계열 유통매장의 ATM을 조달한 실제 주체는 롯데피에스넷이다. 하지만 그룹은 롯데피에스넷이 한 제조사로부터 ATM 3,534대를 납품 받는 과정에 제3의 계열사인 롯데알미늄을 '물품 정거장'으로 끼워 넣었다. 신동빈 그룹 회장이 직접 지시했다고 한다. 그 결과 롯데알미늄은 제조사로부터 666억원에 ATM을 구매해 롯데피에스넷에 707억원에 되파는 식으로 가만히 앉아 41억원의 매출차익을 올린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신 회장이 같은 계열사임에도 롯데피에스넷엔 41억원이나 비싸게 ATM을 구매토록 하고, 그 차익을 고스란히 롯데알미늄에 안겨 준 이유다. 사실 롯데피에스넷은 애초부터 롯데그룹 계열사는 아니다. 전자금융 솔루션 중소기업인 케이아이비넷이 ATM 서비스 관련 자회사의 지분 55%를 롯데에 넘겨 만들어진 회사로, 지분의 28%는 여전히 케이아이비넷이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롯데로선 이익의 28%를 남에게 줘야 하는 롯데피에스넷에 이익을 발생시키는 대신, 재무상황이 어려운 롯데알미늄에 그 이익이 쓰이도록 '조정'한 셈인 것이다.
재벌그룹이 물품 및 서비스 조달과정에서 계열사를 끼워 넣어 '통행세'를 챙기는 일은 허다하다. 총수 일가 소유의 비상장 회사에 '통행세'를 밀어줌으로써 경영권 세습에 활용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식은 주주의 이익을 부당하게 가로챌 뿐 아니라,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의 틀까지 훼손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 용납돼선 안 된다. 공정위는 유사 사례에 대한 조사도 서두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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