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허풍담 1,2,3/요른 릴 지음ㆍ백선희 옮김/열린책들ㆍ각권 216~248쪽ㆍ각권 9,800원
눈 앞엔 아득한 빙산, 칼날 같은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북극 그린란드에서 자발적 고립을 택한 사냥꾼들의 이야기다. 사냥 회사에서 파견된 서른 명쯤의 사내들은 우리나라 반만한 땅덩어리에서 두세 명씩 떨어져 지낸다. 낙이라면 1년에 한번 사냥한 짐승 모피를 수거하러 수송선을 타고 오는 외지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외로움이 극에 달하거나 함께 지내는 동료가 지긋지긋해지면 빙판을 달려 다른 동료를 방문하기도 한다.
어쩌다 신선한 바람을 몰고 찾아온 외지 손님은 어리숙한 이들에게 알록달록 문신을 새겨주고 한몫 단단히 챙겨가기도 하지만 뭐 대수인가. 이렇다 할 일이 없어 좀이 쑤시는 이들에겐 소소한 해프닝일 뿐이다.
마침내 불타는 화살과 빨간 하트 모양 안에 파란색 굵은 글씨로 '엄마'를 새긴 한 사냥꾼을 앞세우고 문신사는 호객행위에 나선다. "엄마를 이 황무지에 모셔올 수는 없지만 적어도 팔뚝에 모시고 다닐 수는 있지"라며 갖가지 문신을 새기라고 꼬드기는 식이다. 고객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고 그리하여 사냥꾼들의 허여멀건 살에 색색의 그림이 그려졌다.
수탉만이 자신과 대화상대라며 방안에서 같이 지내는 기벽을 가진 이도 있다. 그러니까 이곳의 생활은 고독 또는 무료한 일상과의 사투다. 어떤 헛소리든 미리부터 배척하지 않는 게 이곳의 철칙. 때문에 어딘가 한심하지만 개성 넘치는 사냥꾼들이 벌이는 갖가지 해프닝들과 대화는 변증법적 논리가 담겨 있으며 철학적인 사유에까지 다다른다. 물론 대부분은 허풍과 엉뚱한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여자는 수천 킬로미터 밖에 있기에 이 황량한 지역의 사내들은 마침내 상상의 여자를 창조해내기에 이른다. 그녀는 사과나 도넛처럼 보이는 엉덩이, 가슴, 뺨을 지니고, 파란 하늘빛 눈과 빨간 입술을 가졌다. 그 '차가운 여인'을 상상으로 사랑하는 권리를 위해 한 사내는 기꺼이 쌍발 엽총과 실탄 스무 갑을 내놓고, 그 이야기를 들은 또 다른 사내는 자신의 등짝에 그려진 용문신을 양도하기로 한다. 단 양도 시기는 죽은 후이며 그 전에는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기로 약속한다. 상상 속 여인을 놓고 벌이는 그들의 대화는 자못 진지해서 더 우스꽝스럽다. 그녀의 이름은 "망할 엠마!".
어려서부터 탐험을 동경하던 작가는 열아홉에 그린란드 북동부 탐사에 참여했다 광활한 빙국의 매력에 빠져 16년 간 그곳에서 지냈다. 이 책도 그의 특이한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 별생각 없이 끼적여 놓은 글들을 북극 사냥꾼들에게 장식용으로 진열할 책을 팔던 장사꾼이 발견해 몰래 빼냈다. 그가 출판업자에 넘기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지 모른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지만 '허풍담'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며 덴마크 국민작가로 우뚝 선 인물이다. 인구 500만의 덴마크에서는 그가 책을 낼 때마다 평균 25만부 이상씩 판매되는데 집집마다 그의 책이 없는 집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현재 말레이시아에 머물며 빙원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 작가는 이 책을 "추억담도 상상도 아닌, 진실일 수 있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몸을 녹이기 위해 말레이시아에 정착"했다지만 그는 수시로 그린란드를 오가며 끊임없이 이야기거리를 생산해 내고 있다. 이번에는 열 권짜리 시리즈 중 세 권이 번역돼 나왔다. 1권 <차가운 처녀> 2권 <북극의 사파리> 3권 <피오르두르의 은밀한 열정> 이다. 피오르두르의> 북극의> 차가운>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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