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9일 출간한 저서 <안철수의 생각> 은 사실상 안 원장의 국정운영 비전 내지 대선 공약집에 가깝다. 국정 각 분야의 개혁 과제와 한국 사회 진로에 대한 안 원장의 철학과 구상의 골격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다만 구체적인 재정 확보 방안까지 제시한 것은 아니어서 실현 가능성을 따지기엔 아직 이르다. 안철수의>
안 원장이 책에서 주요 개혁 과제로 제시하는 것은 재벌개혁 및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 조세 정의 실현, 노동시간 단축 등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고위공직자수사처 신설 등 사법 개혁, 비정규직 차별 폐지, 원전 축소 및 재생에너지 확대, 남북 평화 정착 등이다. 큰 틀에서 민주통합당의 정책 노선과 다르지 않다.
이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안 원장이 지난 5월 부산대 강연에서 제시한 정의ㆍ복지ㆍ평화이다. 한마디로 '평화를 전제로 한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미국식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북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을 지향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안 원장은 최근 유럽 재정 위기에 대해서도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금융위기 이후 가장 안정된 성장세를 보인다"며 "복지 안전망이 오히려 위기에서 경제를 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의 복지 평화가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이고, 밥 먹여주는, 국민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키워드"라는 것이다.
안 원장은 복지 정책의 각론으로 보육 분야에서는 국공립 보육시설 비중을 전체의 30%로 높이고 아동수당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의료 분야에서는 의료민영화 반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을 내놓았다. 주거 및 교육 복지 정책으로는 전세금 상한제 실시, 반값등록금 단계적 시행안 등을 제시했다.
안 원장은 특히 재벌개혁 및 경제민주화에 대해 야권의 다른 대선주자들 못지 않은 선명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재벌 확장과 이에 따른 시장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공정거래법 강화와 대기업집단법 도입 등으로 불공정 거래 및 편법 상속 등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순환출자 문제에 대해 "유예기간을 주되 단호히 철폐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기업 체제를 주주 중심에서 노동자 및 지역 주민 등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전환해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재벌개혁의 저해 요인인 경제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하면서 사법 개혁 의지도 분명히 했다. 경제 범죄의 처벌을 강화하고 권력형 비리나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고위공직자수사처 신설 방안을 제시했고 탈세에 대해서도 징벌적 배상제 등 강도 높은 제재를 제안했다. 경제 분야의 기본 철학은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이며 이를 실현 하기 위해 인센티브 부여와 함께 강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사회 전반의 공공성을 높이고 공정한 시스템을 확립하려는 의지도 밝혔다. 안 원장은 노동시간 단축 및 임금피크제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비정규직 차별 폐지 등의 노동 정책을 제시했고, 공교육 붕괴와 학교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 개혁을 넘어선 사회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원전 축소 및 재생 에너지 개발 확대 의지도 밝혔다.
안 원장은 남북관계와 관련, 남북 대화와 경제교류를 강조하는 한편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필요할 때 발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원장은 이 밖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건설, 4대강 사업, 용산 참사 등 각종 사회적 현안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야권의 다른 주자들과 마찬가지로 사안마다 현정부의 정책을 "일방적 강행"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을 뿐 아니라 FTA에 대해서는 다른 야권의 일부 대선주자들보다 더 부정적 평가를 내려 눈길을 끈다. 안 원장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기 때문에 무조건 FTA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한미FTA는 적극적으로 재재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쌍용차 사건과 용산 참사에 대해서는 "우리시대 노동자 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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