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영하는 동네헌책방은 여느 헌책방과 마찬가지로 책 사고파는 일을 기본으로 하지만, 책방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문화공간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동네 사람들은 책방에 책만 사러오지 않는다. 이것은 놀랍게도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결코 내가 의도한 어떤 것이 아니다. 심지어 어느 때는 나조차 여기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놀랄 때가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자기 동네에서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며, 혹은 헌책방을 해보고 싶어서 내게 조언을 구하러 오는 분들이 있다. 오면 대부분 궁금한 것들을 한가득 늘어놓고 내게 해결책을 달라고 그런다. 특히 사람들은 책방을 어떻게 홍보하는지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멘토 바람이 불어서인지 나를 멘토로 삼고 싶다는 사람들도 종종 찾아온다. 아주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여전히 좌충우돌하는 젊은이이고, 누군가가 하는 일을 멘토링 해 줄 수 있을 만큼 생각에 체계를 가진 사람이 못 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헌책방을 알리기 위해서 따로 노력하는 것이 거의 없다. 좀 이상하게 생각 될 수도 있지만, 나는 이것을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라는 책으로 유명한 크리슈나무르티(1895~1986)에게 배웠다. 그는 무척 역설적이게도, 진심으로 무엇을 하려거든 그것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진정한 홍보는, 홍보를 하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홍보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아는>
여기 헌책방을 예로 들자면, 따로 홍보한 일이 없지만 아무나 와서 그냥 앉아 있다가 가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기 와서 더 큰 자유를 느낀다. 그러다보니 어떤 일이 생기는가하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책방에 왔다가 자연스러운 계기로 함께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며칠 전 일이다. 일요일 오후, 책방에 자주 오는 근처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함께 먹자며 팥빙수를 사왔다. 그런데 학생이 오기 전 책방에는 이미 손님들이 좀 있었다. 우연찮게 그때 책방에는 중학교 교사 한분과 얼마 전 학교 다니기를 그만 둔 청소년이 한명 있었다. 교사와 탈학교 청소년도 각각 책방에 자주 오는 손님인지라 그날따라 빵과 과자를 간식으로 사들고 왔다. 다들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자연스레 팥빙수와 여러 가지 간식을 가운데 두고 먹으면서 대화가 시작됐다.
처음엔 고교생이 학교에서 했던 인성검사에 대해서 말을 꺼냈고, 그렇게 질문지에 답을 쓰는 걸로 인성을 검사한다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이 말을 교사가 받아서 차근히 설명했고 옆에 있던 탈학교 청소년은 또 다른 식으로 화제를 발전시키면서 결국 우리는 학교와 학생, 교사, 교육의 관한 문제까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런 사람들이 모여 지금처럼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는 건 어떤 식으로 간담회 행사를 만들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유명한 사회자를 불러다놓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서 토론회를 열어도 이날처럼 솔직하고 진지한, 쓸모 있는 대화는 나오기 힘들 것이다.
동네문화란, 사업이 아니라 너른 초원 같은 것이다. 제아무리 아름답게 가꾼 공원의 꽃밭이라고 해도 거긴 내가 어릴 적에 보고 자란 강원 황지 뒷동산만큼 예쁘지 않다. 해마다 청계천과 광화문에서 하는 불빛 축제가 화려하다고 한들 밤하늘에 수억 년 전부터 떠있는 별빛만큼 좋을까. 동네문화가 사라졌다는 말은, 그걸 누가 훔쳐가거나 망가져서 못쓰게 된 것이 아니다. 도시 불빛이 너무 밝아서 별이 보이지 않는 것뿐이다. 사업을 벌여서 동네문화를 일군다는 건 또 다른 인공 꽃밭이나 전구 불빛을 만드는 것과 같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들어 보겠다고 해도 그것은 자연이 아니다.
산불이 난 곳을 전과 같은 상태로 복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놔두는 일이라고 한다. 해수욕장의 아름다운 백사장을 되살리는 방법은, 해마다 거기에 모래를 퍼다 나르는 게 아니라 거기 있는 콘크리트 인공물을 제거하는 일이다. 동네문화도 내가 보기엔 이와 같아서, 무엇을 자꾸 만들어내기 보다는 동네문화가 숨 쉬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들을 찾아내 제거하는 게 먼저다. 그러면 문화는 누가 이끌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다시 살아날 것이다.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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