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자감으로 거론되는 박근혜 의원에 대한 비판을 독설가들의 용어로 요약하면 '박정희 딸'과 '여자 이명박'이다. '여자 이명박'이라는 것은 그가 총선 이후 가장 힘있는 여당 인사이면서도 이명박 정부의 심각한 권력남용문제인 민간인 사찰, 내곡동 사저 논란, 측근비리, 언론파업 같은 일련의 사태를 해결할 의지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부르짖어도 경제나 교육정책도 결국에는 이명박식 부자감세, 승자독식의 기조를 유지할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박정희 딸'이라는 것은 과거 아버지가 남긴 쿠데타와 독재, 치부의 유산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다.
두 갈래 비판에 대한 박 의원의 반박은 '역사논쟁은 그만 두고 민생을 이야기하자'는 데 잘 드러난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 정책을 보자는 뜻이었겠지만 과거에 대한 평가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를 사는, 그래서 미래를 결정짓는 가치관이 바로 과거의 사건, 역사를 보는 데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와 그가 집권하면 그 주변에서 권력을 잡을 대선경선캠프가 역사를 보는 관점은 그가 만들고자 하는 미래 정부의 가치관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캠프 인사들의 역사인식은 문제가 심각하다. 이상돈 정치발전위원이 5.16쿠데타를 '군사혁명'으로 명명하더니 박효종 정치발전위원 역시 '5.16은 시작은 쿠데타로 볼 수 있지만 그 후 사람들의 먹고 사는 것이 혁명적으로 나아졌다는 점에서 혁명으로 부를 수 있다'는 궤변을 펼쳤다. 홍사덕 선대위원장은 '박근혜에게 5.16을 묻는 것은 세종에게 이성계를 묻는 것과 같다'는 말도 했다. 심지어 박근혜 의원 자신도 5.16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 이라고 밝혔다. 집권 이후 먹고 살기가 나아졌다고 총을 들고 민주정부를 뒤집어엎은 것이 혁명이 된다? 스페인의 프랑코도, 칠레의 피노체트도 장기집권하며 나라는 먹고 살기 좋아졌지만 누구도 그들을 혁명가라 부르지 않는다.
그들의 쿠데타는 민간인 학살을 동반했다는 점에서 전두환 방식에 가까우니 다른 인물을 찾아본다면 나폴레옹이 있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박정희 찬양론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프랑스대법전을 만들고 오늘날 도시와 도로체계를 구축하고 강한 프랑스를 만든 것으로는 평가 받는다.(도시와 도로체계는 실상 이전 정부의 구상이다.) 그러나 그가 집권한 1799년 11월 19일의 행위는 '쿠데타'로 프랑스 역사에 기록돼 있다. 이것은 대단한 역사인식이 아니라 그냥 상식이다. 이런 상식을 모르는 이는 바보거나 미치광이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 유럽인들 사이에 나폴레옹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제국주의자라는 인식이 가장 강하다. 나폴레옹이 등장한 후 프랑스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졌는데도 그가 혁명정부를 몰아내고 집권하고 독재한 것을 쿠데타로 기록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밥그릇보다 더 중요한 가치와 원칙이 있다는 것을 그 사회가 공감하기 때문이다. 혁명의 정신은 밥그릇에 있지 않고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를 얼마나 확산시켰느냐에 달려있다.
5.16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현재 박 의원의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척도이다. 아버지가 관계된 일이라서 5.16을 쿠데타로 바로 보지 못한다면 동생의 일이라서 수뢰사건을 바로 보지 못하고 측근의 일이라서 비리를 바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아직 박근혜 의원은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아니다. 만일 공당의 후보로 나온다면 역사에 대한 상식은 갖춰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공당의 후보로 나와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인(私人) 박근혜에게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다. 공인(公人) 박근혜 의원에게 대한민국에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 5.16쿠데타와 유신, 박정희 독재에 대한 현재의 생각을 묻는 것이다. 공인다운 상식을 갖추기 바란다.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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