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는 자리마다 대선 이야기다. 5개월 앞으로 다가왔으니 화제로 무르익을 만도 하다. 후보로 나설 면면이 다른 해보다 유난히 눈길을 끌어 이야기가 더 풍성해진다. 대표적인 인물이 여권의 유력 후보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다. '독재자'의 딸이어서 역사 인식을 추궁 받는다. '여성'에다 '미혼'이라는 점은 알 것 같으면서 모를 '약점'으로 꼬집힌다. "결혼을 해 본 적도 없고 아이를 낳아 본 적도 없으며 자기가 밥을 해본 적도 없고, 남편 때문에 괴로워해 본 적이 없어" 문제라는 식이다.
대항 후보로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선거에 나올 듯 말 듯 '티저 마케팅'으로 연일 주목 받는다. 대선 출사표라도 담을 것으로 기대되던 그의 책이 드디어 나왔지만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일반론을 풀어놔 이걸 출사표라고 해야 할지 '글쎄'다. 조만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면 이 책이 주요 공약집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그냥 한국 사회에 대한 제언에 그칠 것이다.
대통령감을 고르는 중요한 잣대는 물론 후보들의 공약이다. 얼마 전까지도 복지가 최대 화두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야 유력 후보들의 복지 공약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경제도 어려운데 복지 타령이냐고 했다가는 떨어질게 뻔하다는 걸 뒤늦게 여권 후보들도 알아차린 듯하다. 통일 정책은 서로 다르지만, 상대인 북한의 사정이 너무 어수선한 탓에 큰 주목을 받기는 힘들 것 같다.
정말 눈 여겨봐야 할 공약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역시 교육 만한 게 없다. 교육은 양극화, 권위주의 등 한국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자 그런 사회구조를 재생산해내는 토양이다. 최근 박근혜, 손학규, 문재인이 교육 공약을 잇따라 발표했다. 안철수의 책에도 교육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입시 경쟁에 시달리는 한국의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대학 등록금이 비싸다는 현실 인식은 후보들간에 큰 차이가 있을 리 없다. 중요한 건 해법이다.
마침 김상곤 경기 교육감이 취임 이후 메모해 둔 글을 모아 책을 냈다. 한국의 교육현실과 교육개혁에 대한 열망을 담았다. 그 속에 지난해 핀란드 고등학교를 방문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김 교육감 일행은 수업 중인 11학년(고 2) 교실에 들어갔다. 영어 동사 시제 변환을 배우고 있다. 수업을 참관하다가 일행 중 한 명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학교에 오는 것, 그리고 교실에서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한가요? 그렇다고 느끼는 사람은 손을 들어주시겠어요?" 놀랍게도, 망설임도 없이 약 30명 정도 학생 전부가 손을 들었다. 당연한 일을 왜 묻느냐는 표정이다. 이야기를 좀더 나누다가 교실을 나오면서 김 교육감은 가슴 한편이 싸하게 아파왔다고 한다. 우리 고교 2학년 교실에 불쑥 들어가서 "여러분 학교생활이 즐겁고 행복합니까"하고 물으면 과연 몇 명이나 손을 들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는 '교육 복지 확대는 꼭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 교육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해법의 전부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진정한 교육 복지는 교육 혁신을 통한 공교육 정상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중등 혁신교육의 철학과 내용을 담아내고 이어가기 위해서는 대학교육이 혁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입시제도와 대학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초등학교 중ㆍ고등학교가 아무리 혁신하려고 몸부림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무한 경쟁을 요구하는 입시와 대학서열체제를 바꾸기 위해 권역별로 더 많은 '서울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대학 서열화의 정점에 있는 현재의 '서울대'를 없애자는 말이다. 손학규와 문재인은 이 말을 하고 있고, 박근혜와 안철수는 하지 않고 있다.
김범수 문화부 차장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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