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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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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80>

입력
2012.07.1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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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희가 자신이 서울로 압송된 뒤에 집안일도 걱정이고 인쇄한 책의 처리도 급하다 하여 일단 충청도 예산의 형님 집으로 내려갈 작정을 하게 되었다. 서로 결산을 하는데 산삼 팔았던 돈이 천육백 냥 있었으며 책의 방각 인쇄와 옥바라지 비용 등으로 얼추 오백 냥쯤 들었어도 천 냥 돈이나 남아 있었다. 주인 없는 거금이 들어온 것 같았지만 이는 애초부터 천지도를 위하여 쓸 돈이라 박도희는 돈을 수습하여 가면서 은공을 갚겠다며 서일수에게 이백 냥을 노자로 떼어주었다. 박도희는 난이 끝나고 열흘쯤 지나서 경주인의 주선으로 마포 나루로 나아가 충청도로 내려가는 조운선을 타고 낙향했다. 그가 책을 배에 싣고 간 것은 물론이었다. 서일수는 가을로 접어들던 무렵에 박도희를 만나러 충청도로 내려갔고, 이듬해에 그의 안내로 이대 교주인 명월신사(明月神師)를 만나 천지도에 입도하게 된다.

유월 말에 청의 마건충(馬建忠)이 이끄는 병력 사천오백 명이 인천에 상륙하고 연이어 칠월 초에 김윤식, 정여창 등의 조선 사신을 대동한 청의 해군제독 오장경(吳長慶)이 남양만에 상륙했다. 일본군도 거의 동시에 군함 네 척과 일개 대대 병력을 조선에 파견했다. 청은 종주국으로서 속방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이었으나 이 기회에 일본에 선수를 빼앗겼던 조선에 대한 기득권을 회복하려는 것이었다. 청군이 먼저 궁궐을 수비하며 도성 요소마다 군대를 배치하였으나, 일본 측으로서는 조선과 보다 이로운 협정을 맺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보았으며 청과는 상륙 병력의 차이가 있어 감히 분쟁을 일으키려 하지는 않았다. 이제 조선 조정은 청과 일본 양국에 모두 빚을 지게 되었으며 나라의 자주권은 더욱 축소되고 말았다.

청의 오장경, 마건충은 대원군을 진중에서 협의하자고 불러서는 텐진에 가서 황제의 교유를 받아오자고 강압하여 청국에 데려다 억류시켰다. 조선 조정은 다시 청국의 보호 아래 민 씨 척족이 재집권하게 되었다. 조선과 청은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을 체결하여 청나라 상인의 통상 특권을 인정했고, 동시에 조선과 일본은 군란의 책임자 처벌과 피해 배상을 내용으로 한 제물포조약과 조일수호조규속약(朝日修好條規續約)을 체결함으로써 일본의 조선에서의 이익을 더욱 확장시켜주었다. 이것이 칠월 한 달 사이에 그야말로 폭풍이 몰아치듯 급박하게 일어난 급변이었다. 일본은 조선 조정을 통하여 남산 일대에 새로운 공사관을 받고는 일본인 보호를 명분으로 군대를 주둔시켰다. 청은 마건충의 병력이 동대문인 흥인지문 밖에 있는 숭인방 동관묘 앞에 주둔했고 오장경의 병력은 임진왜란 이후 중국군의 전통적 주둔지였던 용산 이태원에 주둔했다. 이들은 칠월 십육일 밤에서 이튿날 새벽에 걸쳐서 왕십리와 이태원 일대의 조선군인 거주지에서 난군의 색출 토벌작전을 개시했다.

이에 앞서 어느 날 서일수와 이신통은 애오개 쌍버드나무 객점에서 칩거해 있었는데 바깥이 떠들썩하여 길가로 나가보았다. 기영 사거리 방향으로 가는 대로변에 사람들이 하얗게 몰려서서 무슨 큰 구경이 난 듯하였다. 앞에 붉은 원을 그린 깃발을 쳐든 자와 금줄에 검을 찬 장교가 말을 타고 앞장섰고 뒤로는 일단의 군대가 삼열 종대로 행군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군대의 모습이었지만 사람들은 모두가 첫눈에 저들이 일본군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검은색 군복에 군모를 쓰고 군화 위로 각반을 두르고 허리에 가죽 탄대를 찼으며 어깨에는 총검 꽂은 소총을 메고 있었다. 그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똑같은 보조로 행진해 나아가는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 말 한마디 없이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다. 다시 한참 뒤에는 청군의 행군도 구경하게 되었는데 짧은 웃옷에 칼을 차고 머리에는 붉은 수술을 드리운 테두리가 작은 삿갓 같은 관모를 쓴 장수가 말을 타고 지나갔고 뒤로 역시 같은 모양의 군모에 총창 꽂은 총을 멘 군대가 열을 지어 지나갔다. 맨 뒤에는 말이 끄는 야포 십여 대가 따라갔고 청국 군대는 끝도 없이 행군하여 지나갔다. 일본과 청의 군대 행렬을 구경한 서일수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마디했다.

이제 나라가 다시는 예전 같지 않을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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