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과 남한산성의 세계문화유산 동시 등재 추진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경기도간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5일 서울시의회 정례회 시정질문에서 "한양도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남한산성과 함께 추진하는 게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박시장의 의지가 분명한 만큼 최근 해당 부서는 물론 지원부서까지 만들어 한양도성과 남한산성의 동시 등재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3년 전 남한산성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뛰어들어 '5부 능선'까지 올라선 경기도가 동시등재에 대해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뛰어든 서울시가 다 되어가는 밥상을 자칫 엎을 수 있다는 것이 경기도측의 판단이다.
18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는 서울시가 올 상반기 두 차례나 한양도성과 남한산성 공동 등재 추진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두 곳의 유적이 지닌 보편적 가치(OUV)가 다르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남한산성은 지리ㆍ기능적으로 도성을 직접 방어한 시설이 아니라 전란 시 부수도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도의 주장이다. 따라서 조선후기 수도방위체계를 OUV로 한양도성과 연계하면 남한산성뿐 아니라 이미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까지 포함시켜야 해 유네스코가 원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의 '완전성'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여기에 동시 등재될 경우 남한산성이 한양도성의 부속산성으로 한정돼 고유의 가치가 퇴색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남한산성이 한양도성에 비해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는 점도 동시 등재를 반대하는 이유다. 남한산성은 2010년 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2월에는 공개경쟁을 거쳐 국내 잠정목록 13개 중 문화재청의 우선추진 대상에 선정됐다. 경기도는 지난 10여 년간 203억원을 투입해 남한산성 행궁과 성곽 복원도 마쳤다.
남한산성 등재신청서는 한글판이 지난달 완성됐고, 영문 번역작업도 80%가 진행돼 올 연말이면 완료된다. 내년 1월 신청서를 제출해 2014년 6월에 등재하는 것이 경기도의 목표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함께 가면 둘 다 등재되지 못하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며 "다른 OUV를 통해 연차적으로 두 유산이 모두 등재되는 것이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시는 동시 등재의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한양을 방어한 한양도성 남한산성 북한산성은 개별 성곽이 아닌 연계 성곽이라는 것이 서울시 논리다. 세 성곽이 뭉치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문화유산이 되고, 역사관광벨트로서의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는 주장이다.
한양도성은 올 4월 20일 잠정목록에 포함됐다. 시는 내년에 문화재청의 우선추진 대상에 올린 뒤 2014년 신청서 제출, 2015년 등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2015년까지 한양도성 전 구간 복원 작업도 병행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기도가 1년만 늦춰주면 세 성곽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며 "남한산성이 따로 등재돼도 한양도성 등재는 무리가 없겠지만 가치가 다소 떨어지는 북한산성은 영원히 등재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두 지자체 간 갈등으로 번질 소지가 있어 주무기관인 문화재청은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문화재청은 아직까지 딱 부러지는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청 측은 "등재 가능성과 행정의 신뢰성, 등재 추진의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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