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다툼까지 가며 깊은 불신의 골이 패였던 삼성전자와 KT 사이에 모처럼 화해기류가 돌고 있다. 업계에선 양사가 악연을 털어내고, 새로운 동맹체제 구축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KT가 4세대 이동통신인 LTE 가상화 서버기술과 관련해 배타적 상호 제휴를 맺었다. KT가 독자 개발한 이 기술은 144개 LTE 기지국을 하나의 가상서버로 묶어 빠르고 끊김 없는 LTE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KT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관련 장비를 만들어 2년 동안 KT에만 공급하기로 협약을 맺었다"면서 "대신 KT 역시 이 기술은 오로지 삼성전자 장비에서만 작동하도록 개발했다"고 말했다.
양 사는 앞으로 해외시장까지 공동 개척할 방침. 이미 독일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 여러 통신업체들이 관심을 표명해와 수출협상을 벌이고 있으며, 현재 양 사의 이름을 내건 LTE 신문광고까지 하고 있다.
양 사의 협력은 KT가 와이브로(휴대인터넷기술)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중국식 시분할(TD)-LTE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세계 최대 와이브로 서비스업체인 미국 스프린트가 와이브로를 포기하고 LTE에 주력하기로 하면서, 삼성전자도 와이브로 장비생산을 중단하고 TD-LTE 장비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현재 이 장비는 KT에 공급되고 있다.
KT는 TD-LTE가 본격화될 경우 관련 스마트폰 또한 삼성전자에서 공급받을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퀄컴에서 기존 LTE와 TD-LTE를 하나의 휴대폰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통신칩을 개발 중인데 삼성전자가 이 칩을 이용한 스마트폰도 만들 계획"이라며 "이 제품이 나오면 KT에 공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최근 3~4년간 KT와 삼성전자는 사사건건 대립하며 극한 갈등을 빚어왔다. 그 시작은 지난 2009년 KT가 애플로부터 아이폰을 들여오면서부터. 삼성전자가 국내 휴대폰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KT가 가장 먼저 아이폰을 들여오자 삼성전자는 발끈했고, 다음해 스마트폰 '옴니아'를 출시하면서 KT에만 옴니아 브랜드를 떼고 공급했다. 모델명만 부착된 기이한 휴대폰이 된 셈. 삼성전자는 이후에도 갤럭시폰 등을 KT에는 늦게 공급하고 제조사 보조금도 타 이동통신사에 비해 차등을 뒀다.
이에 이석채 KT 회장은 옴니아폰을 옴니아라고 부르지 못한다고 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폰'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이후 이 회장은 공개석상에서 "정부가 아이폰 도입을 늦춰주는 바람에 삼성전자가 살았다"고 노골적으로 삼성을 자극했다.
양사의 갈등이 극에 달한 건 지난 2월, KT가 삼성전자 스마트TV의 인터넷접속을 전격 차단하면서다. KT는 스마트TV가 인터넷 망에 부하를 주는 만큼 삼성전자에 대가를 요구하면서 인터넷 접속을 끊어버렸고, 삼성전자는 KT를 상대로 인터넷접속 중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개입으로 KT의 인터넷접속차단은 해제됐지만, 업계에선 "두 회사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 같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물론 스마트TV를 둘러싼 갈등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하지만 LTE를 중심으로 최근 전개되는 양사의 협력관계를 보면 '일전불사'의 험악한 분위기에선 벗어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KT는 유무선을 포함해 국내 최대 통신사이고 삼성전자는 통신장비와 휴대폰의 최대기업인데 애초부터 두 회사가 관계를 전면 단절한다는 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갈등은 남아있더라도 어차피 사업을 위해선 화해는 불가피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KT 관계자도 "싸울 분야에선 싸우고 협력할 분야에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며 "스마트TV와 LTE 협력은 별개 문제"라고 못박았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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