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계 유럽 최대 은행 HSBC가 17일 북한 등 미국이 제재하고 있는 국가들과 거래하고, 멕시코 마약조직의 돈세탁 통로 역할을 한 사실을 시인하고 공식 사과했다. 데이비드 베이글리 런던 HSBC홀딩스의 최고준법감시책임자(CCO)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렌 도너 HSBC 북미지사장은 이날 미 상원 국토안보위원회 조사 소위에 출석해 "HSBC의 관련 규정 위반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와 고객 등의 기대를 저버린 데 대해 깊이 사과한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앞서 미 상원은 '돈세탁 및 테러자금 거래 방지에 대한 미국의 취약성'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해 HSBC의 불법 거래 의혹을 제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HSBC는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가 시행된 2005~2007년 북한과 거래했으며, 7명의 북한 고객에게 230만달러가 넘는 규모의 계좌를 제공했다. 북한의 조선무역은행 명의로 된 달러 계좌는 2010년 4월까지도 폐지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HSBC는 2001~2007년 미국의 제재 대상이었던 이란과 총 2만5,000건의 거래를 하고, 194억달러의 자금을 송금 받았다. 이 과정에서 HSBC 고위 간부들이 미국 금융 규제망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이란 금융기관에 알려줬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2002년부터 CCO직을 맡은 베이글리도 이 과정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외에도 국제테러조직인 알카에다의 자금이 사우디아라비아, 방글라데시 등을 통해 미국으로 유입됐다.
멕시코 마약조직이 HSBC의 멕시코지사를 이용해 2007~2008년 총 70억달러의 마약판매자금을 미국지사로 보낸 사실도 발각됐다.
이번 사태로 HSBC에 10억달러의 벌금이 부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바클레이스 은행의 리보금리 조작 파문, 네덜란드계 ING은행의 이란ㆍ쿠바 회사 불법 자금거래 등 대형 은행들의 불법 거래 사건이 이어지면서 정치권의 금융기관 규제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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