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의 여러 전설 중에 한강다리 통과묘기가 있다. '빨간마후라'의 주인공 김영환과 김신, 장성환 등 혈기방장한 청년장교 3명이 창군직후 한강교각 사이를 비행하다 당시 김정렬 참모총장에게 혼쭐이 났다는 얘기가 그런 것이다. 기종은 미국에서 갓 도입된 L-4 연락기였다. 이후 1960년대 한강에서 에어쇼가 열렸으나 제트전투기로는 이미 가능하지 않은 기동이었다. "한강 에어쇼에서 분명히 봤다"는 노인들의 기억은 그러므로 전설이 부풀려진 것이다.
■ 2006년 낡은 A-37 추락사고의 아픔을 겪고 해체됐던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는 2009년 국산초음속기 T-50으로 새롭게 편제를 갖췄다. 이 해 가을 서울국제항공우주전(ADEX)은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무대였다. 현장에서 함께 쇼를 펼친 세계최고 명성의 미 공군 선더버드팀보다 더 나아 보였다. 솔직한 소감에 "에이, 그럴 리가"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한강 에어쇼를 왜곡 기억하는 노인들처럼 자국군에 대한 감상적 부풀림이란 핀잔을 들었다.
■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때 느낌이 결코 틀린 게 아니었다. 블랙이글스가 국내를 벗어나 처음으로 시험 진출한 국제무대에서 깜짝 놀랄만한 성과를 거둔 것이다. 지난달 영국 와딩턴 에어쇼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데 이어, 이달 초 세계최대 군사에어쇼인 RIAT에서도 유례 드문 심사위원 전원일치로 대상과 관객의 인기상을 휩쓸었다. 세계3대 에어쇼로 꼽히는 판보로에어쇼는 순위를 매기는 행사가 아니었지만 여기서도 단연 독보적인 기량으로 주목을 받았다.
■ 6년 전 사고 때 무성했던 시각 좁은 비판들처럼 군 특수비행팀은 한가한 전시행사용이 아니다. 좁게는 군사적 실력을, 넓게는 국가의 기술산업수준을 과시하는 또 다른 국제전장의 전사들이다. 강국들마다 심혈을 기울여 특수비행팀을 운용, 지원하는 이유다. 최근 차세대전투기 선정 지연 등으로 장차 적정 항공력의 유지조차 버거워진 비상상황에서 보란 듯 위용을 보여준 블랙이글스의 쾌거는 그래서 의미가 더 각별하다. 그 블랙이글스 전사들이 18일 귀환했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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