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에서 생활하고, 자랐기에 프랑스인이에요. 그런데도 마치 한국인이 장관이 된 듯한 분위기가 형성돼 이해하기가 좀 어려웠어요."
서울 마포구 합정동 홀트아동복지회(이하 홀트)에서 통ㆍ번역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경덕수(26ㆍ프랑스명 니보티 조슬랑)씨는 지난 5월 한국계 입양인으로 프랑스 중소기업ㆍ디지털경제부 장관에 오른 플뢰르 펠르랭(38ㆍ한국명 김종숙)씨를 바라보는 한국민의 시선에 의문이 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필리핀 출신 결혼 이주여성으로 한국에 귀화한 이자스민씨가 국회의원이 된 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봤는데, 프랑스인들에게 이자스민 의원처럼 느껴질 만한 펠르랭 장관에 대해서는 모두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하고 대서특필했다.
그는 "한국전쟁과 지독한 가난 등을 겪으며 불가피하게 입양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제가 입양인이라고 하면 아저씨 아주머니가 저에게 미안해 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한다"면서도 "한국인의 이중적 모습에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생후 16개월 만에 프랑스로 입양된 경씨는 어머니의 나라를 좀 더 알려고 2003년 처음 가족과 함께 관광 차 한국을 찾았다. 힘이 넘치고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경씨는 '모국어를 배우는 게 어떠냐'는 어머니의 말에 2006년 한국어 과정이 개설된 프랑스 서부 라로셸대학 언어학과에 입학, 본격적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2009년 한국 정부의 초청장학생에도 뽑혀 서울대 경영대학원 석사 과정에 발을 디뎠다.
한국에 온 뒤 경씨는 매주 금요일 합정동 홀트 사무실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한국어 영어 불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그는 해외 입양인이 한국의 친부모와 편지를 주고 받을 때 번역해 주거나 한국을 찾은 입양인의 통역을 돕고 있다.
13일에는 모국 문화를 배우러 온 홀트 출신 입양인 22명과 함께 서울 종로구 효제동의 한 요리학원에서 한국요리 체험에 나섰다. 그는 "잡채는 각종 잔치에서 빠지지 않는 한국의 대표 음식이다", "뱃속에 있을 때도 생명체로 간주해 한국은 서양 나이에 한 살을 더한다"는 설명을 양념으로 곁들였고, 입양인들은 어머니 나라의 음식을 눈과 입으로 즐기며 경씨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웠다.
2년 8개월 넘게 해온 일이지만 아직도 입양인이 친부모를 만날 땐 통역하는 경씨도 바짝 긴장한다. 오랜 기간 이역만리 떨어져 있다 첫 상봉하는데 문화가 다르고, 의사소통도 안 되는 상황에서 자칫 본인의 통역 실수로 작은 오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특히 입양인들이 왜 자신이 입양을 가게 됐는지, 아버지(또는 어머니)가 누구인지 등 자신의 과거를 직설적으로 물을 땐 난감하다. 특히 입양 보낼 당시 미혼모였던 어머니들이 떠난 보낸 자식들과 만날 때 가장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경씨는 "어머니는 옛날 일을 다 말해주고 싶어도 자신의 과거가 지금 가족에게 알려질까봐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고 나 역시 돌려 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로 만난 감격 때문인지 분위기가 썰렁해진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경씨도 2009년 11월 홀트를 통해 이복동생과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등 가족을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땐 '(이들이) 내 가족이구나'라는 생각만 들고, 큰 감흥은 없었어요. 하지만 '샤워시켜 줄 때 많이 움직여 애먹었다'는 사촌 누나의 말을 듣고 나서야 실감이 났어요." 그는 이후에도 가족들을 종종 만나 안부를 전하고 있다.
8월말 졸업하는 그는 요즘 여느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일 자리 구하느라 정신이 없단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마케팅 관련 업무를 하는 게 1차 목표. 프랑스에 가면 더 쉽게 일자리를 구하고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도 굳이 한국에서 고생을 사서 하는 이유를 묻자 경씨는 "한국에 온 지 이제 4년째지만 사람들이나 문화가 너무 편하게 느껴졌다"며 "입양인들을 위해 작은 보탬이 되는 자원 봉사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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