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어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10월 유신'에 대해 거듭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5년 전인 2007년 7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의 발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현재 여야 대선주자 가운데 누구보다 '원칙과 소신'을 강하게 부각해 온 그의 이미지와는 잘 어울릴지 모른다. 그러나 변화로 점철된 5년의 세월을 보낸 다음이어서 더욱 성숙하고 안정됐으리라는 기대와는 적잖이 동떨어진다. 자칫 하면 고집불통으로 비치기 십상이어서, 국가 최고지도자 후보에게 요구되는 전략적 유연성에 의문을 불러 일으킬 만하다.
더욱이 이런 애매한 답변은 질문에 똑바로 대답한 것이 아니라 대답을 피한 것과 다름없다. 이날 토론회에서 언론인들이 박 전 위원장의 '10월 유신' 인식을 물은 것은 국민의 궁금증을 대변한 것이었다. 박 전 위원장의 인식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그것이 정치적 지지와 투표 성향을 좌우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의 인식은 드러내지 않은 채 곧바로 역사의 판단에 미루었다.
이런 자세는 '5ㆍ16'에 대해서는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히고, 일반적 평가만 국민과 역사의 판단에 미룬 것과도 대조적이다. 5년 전 '5ㆍ16'을 "구국 혁명"이라고 밝혔던 그는 이번에도 당시의 경제ㆍ안보 상황을 들어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거나 "바른 판단을 내렸다"는 주관적 인식을 확인했다. 자신의 생각과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국민의 판단,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사족을 덧붙이긴 했지만, 이미 스스로의 생각을 충분히 밝히고 난 뒤였다.
한국 현대사에 빛과 그림자를 드리운 두 정치 사건을 두고 이처럼 대조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5ㆍ16'에 비해 '유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훨씬 혹독하다는 점에서 박 전 위원장의 애매성은 비겁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다음에는 더욱 분명하게 국민의 궁금증에 답하길 박 전 위원장에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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