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마감을 단 24시간만이라도 앞당겨야 합니다."
지난 6월28일 박상준(61) 경기도 기상정책자문관은 다급한 목소리로 재난복구팀장을 찾았다. 박 자문관이 지목한 것은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군사시설물 철거 공사현장. 지난해 집중호우 때 시설물이 물길을 막아 하천이 범람하면서 2명이 생명을 잃은 곳이다. 공사는 당초 6월 30일까지 마무리 될 예정이었지만 박 자문관은 30일 새벽부터 경기 북부에 100㎜ 이상의 집중호우가 내릴 것으로 보고 공사를 서둘러 끝낼 것을 주문했다. 공사는 29일에 끝났고, 그 다음날 150㎜ 폭우가 파주시를 강타했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나 재산피해는 없었다.
기상청을 퇴직한 전문가들의 활약이 돋보이고 있다. 현재 경기도 재난대책담당관실에서 일하는 박 자문관과 한국전력거래소에서 근무하는 2명의 기상청 출신 전문가가 해당 기관에 맞춤형 예보를 하고 있다.
박 자문관의 주요임무는 기상청이 제공하기 어려운 도내 31개 시ㆍ군의 기상상황을 정밀 예측해 공무원들이 대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지난 1월 31일 양평군에 9㎝의 폭설이 내렸을 때도 박 자문관이 기상청보다 하루 전에 예보를 한 덕에 도는 1만여명의 인력을 동원하고 염화칼슘 등 1만2,000톤 가량의 자재를 사전에 준비해 무사히 제설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경기도가 박 자문관을 고용한 데는 지난해 수해가 크게 작용했다. 도에서는 지난해 폭우로 인한 산사태와 저지대 침수 등의 사고로 4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재산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6,000억원 가량의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됐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박 자문관에게 올해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1억원의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박 자문관은 현재까지 '인명피해 제로'라는 올해 목표를 잘 지켜오고 있지만 집중호우와 태풍 시즌을 앞두고 부족한 인력 때문에 부담이 크다. 박 자문관은 "자료를 분석할 사람이 나 뿐이라 오전 7시반 기상보고를 위해 새벽 3시에 집을 나서야 한다"며 "날씨가 안 좋으면 며칠씩 사무실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전날에도 비 소식 때문에 사무실에서 밤을 지샜다는 박 자문관은 "기상청에선 순환근무를 했는데 여기선 혼자 뿐이라 힘이 많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전력거래소에도 기상청 예보관 출신인 장익순(60), 김남길(60)씨가 자문관으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은 전력사용량이 많은 전국 5대도시의 기온, 습도, 풍향 등을 파악해 전력수요량 예측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김 자문관은 "요즘같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에는 습도가 조금만 높아져도 에어컨 가동률이 크게 올라간다"며 "시간대별 변동 상황에 늘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력거래소가 예보관 출신의 자문관을 두게 된 것은 지난해 9ㆍ15 대정전 사태가 계기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전력 수요를 정확히 예측해 발전기 운영계획을 세우려면 디테일한 기상정보가 필수"라며 "두 분에게 굉장히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다 정확한 전력수요 예측을 위해 기상전문가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장 자문관은 "기상상황은 끊임없이 모니터를 해야 한다"면서 "근무자가 없는 휴일과 야간에는 체크하지 못해 연속적인 분석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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