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강원 양구군 송청1리 마을회관. 잔칫상에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손자 같은 군인이 마련했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회관에 모인 어르신 100여명은 "기특하다"며 칭찬 한 마디씩을 보탰다. 잔치를 연 육군 2사단 전차중대 소속 오효진(32) 중사를 향한 고마움이었다
오 중사는 지난달 양구군이 주최한 '제1회 청춘양구 군수기 씨름대회'에서 우승, 160여만원 상당의 송아지를 상품으로 받았다. 이날 잔치는 이 송아지를 판 돈으로 벌였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읜 그는 어린 시절 줄곧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나 할머니에겐 손자의 잔칫상을 받아 볼 기회가 없었다. 오 중사는 15일 "군 생활 내내 동네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그에겐 씨름이 전부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씨름에 입문한 뒤 중학교 시절 승승장구했으나 고교 1학년 때 좌절이 찾아왔다. 무릎 부상으로 운동을 지속할 수 없었다. 다시 샅바를 잡은 건 지난해 10월이었다. "아내가 권했어요. 씨름에 대한 저의 미련을 본 거죠. 양구군 지역축제 씨름대회에 참가 신청을 한 뒤 2주 동안 준비 했습니다." 재능은 녹슬지 않았다. 리그 식으로 치러진 대회에서 참가자 13명을 모두 이기고 우승했다. 23명이 출전, 토너먼트로 펼쳐진 올해 대회에선 5승을 보탰다. 어르신을 위한 마을 잔치도 지난해 대월리에 이어 올해 두 번째다. 올해는 부대 장병들도 적극 지원에 나섰다. 의무대는 진료 봉사를, 정비대는 농기계 수리를, 군악대는 공연을 각각 맡았다.
오 중사는 앞으로 더 큰 잔칫상을 더 자주 차릴 각오를 다지고 있다. "기회가 되면 어르신뿐 아니라 주변의 소외된 이웃에게 힘을 주기 위한 잔치 자리를 매년 마련해보고 싶습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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