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피부에 긴 귀걸이를 늘어뜨린 여성이 패션 모델들의 사진을 꼼꼼히 훑어 보고 있다. 그가 불만스런 표정을 짓자 주위에 둘러선 사진가와 디자이너, 재봉사들이 아연 긴장하기 시작했다. "피부에 오일을 너무 많이 발랐어. 드레스를 보여주려는 거지, 모델의 다리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잖아?"
우간다 출신의 실비아 오우오리는 동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성공한 패션 사업가이자 떠오르는 아프리카 중산층의 아이콘이다. 우간다 수도 캄팔라와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 패션 부티크 숍을 운영하는 그는 매년 로마와 파리에서 컬렉션을 개최하고 패션잡지 을 발간하고 있다.
슈피겔은 '아프리카의 희망, 중산층'이라는 기사에서 이 대륙의 경제성장 속도가 아시아 국가들과 맞먹는다고 전했다. 올해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10개국 중 5곳은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들이다. 눈부신 성장의 배경에는 아프리카 인구 34%를 차지하는 중산층이 있다.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중산층은 지난 30년 간 3배나 증가해 3억1,300만 명에 이른다.
'블랙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아프리카 중산층은 연소득 3,900달러 이상의 개인이다. 하루에 2~20달러를 소비할 수 있는 계층으로, 소비액에 따라 저중산층과 고중산층으로 나눠진다. 이들은 대부분 도시에 거주하는 고학력자들로 자기 사업을 하거나 직장인들이다. 이들의 구매목록 윗자리에는 생필품 대신 TV 자동차 의류 등이 올라와 있다. 주방을 현대식으로 개조하고 헬스클럽에서 몸매를 가꾸는 데 열중하며 채식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채소는 얼마 전까지 빈민들의 식량이었지만, 중산층 사이에 분 웰빙 열풍 때문에 최근 판매량이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급부상하는 아프리카 중산층이 이 대륙의 경제뿐 아니라 정치, 사회 전반에 변혁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 부패한 독재 정권이 자원 수출로 돈을 벌어 소수 권력자들끼리 나눠가진 것과 달리, 중산층이 주도하는 경제성장은 지역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다. 주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은 자국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상품을 생산하면서 고용 창출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자연스레 고급 인력이 늘어나고, 반대로 기업 활동에 방해가 되는 관료주의나 내전, 부패는 꼬리를 감추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AfDB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므슬리 엔쿠베는 "아프리카 중산층은 민주주의 수호신"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아프리카를 여전히 원조 대상으로만 여기는 통념이 첫째다. 우간다에서 제약사업으로 큰 돈을 거머쥔 엠마누엘 카통골로는 선진국들이 개발 명목으로 정부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에 대해 "정부를 게으르게 만들 뿐"이라며 "정말 이 대륙을 생각한다면 기업을 도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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