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데뷔작인 SBS '머나먼 쏭바강'(1993년) 전투 신 이후 죽어서 중간 하차한 건 20년 만이네요. 그래도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프레임아웃'돼 홀가분합니다."
SBS 수목드라마 '유령'에서 한영석 형사로 출연했다가 극 중반 하차한 권해효(47)를 10일 서울 동숭동 카페에서 만났다. '유령'에서 한영석의 죽음은 중요한 복선을 지닌다. 결정적인 단서를 갖고 사라져 잠시 경찰 내부 스파이로 몰렸다가 살해당하는 한 형사 때문에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의 범인 검거 의지가 불타오르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배신감에 이어지는 짜릿한 반전을 만끽했다. 그가 "죽어도 좋다"고 한 이유다.
그는 자신을 "빈 구석을 채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유령'에서도 그렇지만 "극이 현실감을 잃어갈 때 공중에 '붕' 뜨지 않고 두 발을 땅에 붙이게 하는 역할"을 자주 맡아서다. 그런 역할을 해내는 데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나오는 현실감각이 적잖은 도움이 된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계열 조선학교를 후원하는 '몽당연필' 공동대표, 우리겨레 하나되기 운동본부와 한국여성단체연합 홍보대사 등 10여년 이어온 왕성한 사회활동이 연기에 버무려지고 있다.
하지만 권해효는 자신에게 붙는 '명품조연'이라는 수식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배우를 조연, 주연에 얽어 매는 계급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 보다가 설경구, 송강호씨가 '딱'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주연급인 거죠. 아무리 명품 연기라도 조연급에는 캐스팅 할 수 없는, 이상한 풍토를 만들어 버린 겁니다."
드라마 제작환경에도 불만이 적지 않다. 5분당 15초짜리 광고 2개를 넣으려고 과거 50분이던 대부분의 드라마 길이가 지금은 70분까지 늘어났다. TV드라마는 아무리 재미 있어도 40~50분이 넘어서면 늘어지게 마련. 편집실에서 영상이 부족하다고 비명을 지르면 작가는 빈 시간을 메우기 위해 없던 장면을 넣고, 현장에서는 부랴부랴 영상을 만들어야 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는 "외국도 드라마 길이가 보통 40~50분이어서 우리나라 드라마를 수입하면 방송사에서 10분씩 편집해 방송한다더라"며 "드라마 얼개가 허술해질 수밖에 없어 한류에도 타격"이라고 지적했다.
연기에 대한 포부를 묻자 "아, 배우 권해효 인터뷰였죠"라며 계면쩍게 웃는다. "'저 배우 정말 싫어'하면서 드라마 볼 때가 있잖아요. 연기력에서든, 인간성으로든'싫은 배우'는 안 돼야겠죠."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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