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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집, 있으니까 설움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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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집, 있으니까 설움이네

입력
2012.07.1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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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아줌마가 결국 집을 내놓으셨다. 3년 7개월 전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만 해도 아줌마는 딸의 이름으로 마련한 집에 대한 기대가 무척이나 크신 듯했다. 웬만해선 절대로 누구에게든 팔지 않을 작정처럼 보였더랬다.

20층 꼭대기인데다 복층 다락방을 전면 개조하여 마치 화가의 아틀리에처럼 멋지게 집을 꾸며두었던 아줌마는 여러 후보군 가운데 날 택한 이유를 혼자 사는 직장인 여성인 데서 찾았다고 했다. 생전가야 못질 한번 안 하고 고등어 한 마리 구워먹지 않을 나니 벽이 뚫리고 천장에 그을음 밸 일 없는 게 사실 주인 입장에서 나쁜 일은 아니니까.

처음 들어가 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역세권에 새로 지은 아파트라 값이 꽤나 비쌌더랬다. 팔려고 산 아파트니 임자 만나면 좀 남기고 넘길 거예요, 하던 아줌마였거늘 오백만 깎아주세요 하던 조건의 사람들도 건건이 다 밀어내더니 글쎄 오늘날 반값에 팔 작정을 하게 되셨던 거다. 딱 2억 떨어졌어요. 세상에나, 2억이 누구네 개 이름도 아니고 아줌마는 피가 거꾸로 솟아 어찌 밤에 잠을 이루실까.

하기야 이자폭탄 껴안은 채 무리하게 집을 샀다 반 토막이 된 집값 때문에 인생이 터지기 일보 직전인 가계들, 어디 한둘일까. 집을 보겠다며 한 신혼부부가 왔다. 둘러보더니 계약하겠다고 했단다. 이 집 살면서 나쁜 점은 하나 없고 좋은 점은 꽤 돼요. 이 말이 뭐라고, 집주인 아줌마 자꾸만 고맙다 그러시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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