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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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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75>

입력
2012.07.1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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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정승의 집 같으면 약조도 없이 찾아간 이들에게 하인조차 냉소를 날릴 법도 하건만 다시 묻는 것이었다.

무엇 하는 분들이슈?

우리는 군영의 군교들인데 대원의 대감께 아뢸 말씀이 있어 왔소.

하인은 잠깐 기다려보라며 안으로 들어갔다가 그들을 헐숙청으로 안내했다. 청지기가 그들의 접견 목적을 자세히 따져 물었고, 김만복은 작금의 선혜청 소란 사건에 대하여 말하고는 통문을 꺼내어 그에게 내보였다.

우리는 거사를 하기 전에 대원의 대감께 하소코자 합니다.

한번 아뢰어는 보겠소.

그가 한참 뒤에 나타나 안으로 들이라는 분부가 있어 세 사람은 대원군의 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에 올라갔다. 청지기가 사랑방 문을 열면서 마루에 올라섰던 그들에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얼른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 알현하시오.

그들은 방문 안으로 들어섰고 아랫목 보료 위에 장침에 기대어 앉은 노인이 보였다. 세 사람은 일제히 부복하였고 대감이 말했다.

고개를 들고 편히들 앉게. 누가 구속된 자의 식구인가?

사수 영길이 허리를 폈다가 얼른 다시 상체를 숙이며 대답했다.

소인입니다, 대감.

허허, 급료를 달라고 항의하였다고 잡아가두는 것은 인사불성(人事不省)의 짓이다. 내가 저들에게 알아듣도록 타일러서 우선 밀린 급료를 지불토록 할 것이며, 시시비비는 군율에 맞게 가릴 것이지만 억울한 사람은 곧 풀어줘야 한다. 부정을 저지른 관리가 있다면 국법으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는 대원군이 다시 묻는다.

통문의 책임을 진 사람은 누군가?

예, 저는 별장 김만복입니다.

날이 밝는 대로 선처를 내릴 것이니 자네들은 돌아가서 군사들에게 알리고 곧 해산하도록 하라.

대감은 그렇게 말하고는 두루마기에 갓을 쓴 민간복 차림의 서일수에게 시선이 머물더니 잠깐 바라보다가 물었다.

자네도 군교인가?

서일수는 미리 약속한 바가 있어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올시다. 저는 이 사람 김만복의 언니 되는 사람으로 저희가 겪은 사연이 너무도 안타까워서 대감께 알현하고 한 말씀 올리고자 감히 따라왔습니다.

대원군은 그의 말을 기다린다는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일수를 바라보았다.

지금 전 조선의 식자들이 척사척왜(斥邪斥倭)를 주장하며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어찌 이러한 정국을 그대로 보고만 계시렵니까?

대원군은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위로 주상전하께서 계시고 조정에 삼정승 육판서 이하 현량한 신하들이 나라를 위하여 노심초사하고 있거늘, 네깟 놈이 무슨 경륜으로 정국 운운하는가? 네가 지금 역적질을 하려느냐?

황공하옵니다.

서일수와 나머지 두 사람도 부복하고 있더니 대감은 다시 잔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돌아갔다.

내 너희들의 충정을 모두 알았으니 돌아가 처결을 기다리라.

세 사람이 약간의 진땀을 빼고 노안당을 나오는데 배석했던 청지기가 뒤따라오더니 그들에게 말했다.

잠깐, 대감마님께서 약주라도 대접해드리라 하셨으니 이리 오시오.

그는 세 사람을 아랫사랑으로 안내했는데 방문을 여니 군복 차림의 무관 한 사람이 앉아 있다가 그들을 맞았다. 서로 이름을 대며 수인사를 나누는데 무관이 말했다.

허민(許旻)이라 하오. 대전(大殿) 별감이었으나 지금은 운현궁의 호종무사로 지내고 있소.

다담상이 들어오고 서일수 김만복 유영길 등은 호종무사 허민과 더불어 한잔 마시면서 친숙해지고 다음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하여 의논을 하였다. 허민 또한 훈련도감의 군교 출신이라 신분도 서로 간에 얼추 비슷한데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거사에 의기투합하고 있었다. 그가 왕궁의 지리와 요소를 자세히 알고 있어 대원군이 어떤 생각으로 그를 난군의 주동자들과 만나게 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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