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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녹색 대나무 바다 펼쳐진 저장성 쑤이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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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녹색 대나무 바다 펼쳐진 저장성 쑤이창현

입력
2012.07.1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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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묻지 않은 풍광보다 때타지 않은 사람에 더 끌리다

급하게 이룩한 경제적 풍요가 수천 년 묵은 인간의 풍경과 섞여 어울리지 못하고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생경함으로 다가오는 것이 중국 여행에서 마주치는 당혹감이다. 저장(浙江)성은 신흥 부자가 많은 지역이라 들었다. 비행기가 닝보(寧波) 공항에 내렸을 때, 그래서 훅 하고 덮친 더위만큼 어긋버긋한 풍경에 대한 예감이 버거웠다. 그러나 버스로 4시간 달려 도착한 쑤이창(遂昌)현은 자본의 번요함으로부터 아직 멀리 있었다. 황토로 벽을 바르고 흙을 구워 만든 기와를 얹은 집들이 작지만 푸근했다. 주민들의 눈에는 외국인에 대한 수줍은 호기심이 그렁그렁했다. 시골 농사꾼 인상의 현 관리가 준 책자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금산임해, 선현수창(金山林海, 仙縣遂昌ㆍ금덩이 같은 산과 바다처럼 넓은 숲, 신선이 사는 고을 쑤이창)'. 촌스럽지만 정겨운 표현이었다.

죽해(竹海), 대나무의 바다다. 중국에서 대나무는 워낙 흔한 것이지만 쑤이창은 유난히 더 많은 듯했다. 높은 산봉우리는 측백나무 같은 침엽수로 덮여 있다. 그러나 구릉과 마을에서 밝고 윤택한 녹색으로 일렁이는 것은 온통 대나무다. 바람에 파도처럼 일어나는 푸른 잎사귀의 물결, 영화 '와호장룡'의 장면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대나무숯을 만들어 파는 일이 농사짓는 살림의 적잖은 부분을 차지한다는데, 대나무는 밥 때마다 식탁의 적잖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식당 종업원이 나르는 접시 둘 중 하나엔 죽순이 들어 있었다.

다른 곳에 비해 내세울 만한 유적이 많지 않은 까닭에, 쑤이창엔 아직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뜸하다. 산과 계곡이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도 겨우 7, 8년 전의 일이다. 덕분에 때묻지 않은 농촌의 맨살을 만나볼 수 있다. 수려한 풍광보다 질박한 사람들의 표정에 끌렸다. 명승지 탐방을 포함한 몇 가지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었다. 길게 고민하지 않고 시골 마을 트레킹을 선택했다.

트레킹은 해발 1,200m의 산자락에서 시작했다. 기묘한 봉우리와 운해에 잠긴 제전(梯田ㆍ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명승지 난젠옌(南尖岩)에서 가까운 야산이다. 포장된 도로를 벗어난 길은 임도와 밭두렁으로만 이어졌다.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인데도 덥다는 느낌이 크지 않았다. 허벅다리 만한 두께의 대나무 그늘 속을 걷기 때문이다. 대나무숲은 본래 삼나무숲이었다고 한다. 벌목과 개간으로 숲은 오래 전 황폐해졌고 사람들은 거기에 빨리 자라는 대나무를 심었다. 대나무 그늘이 끊어진 자리마다 다랑이논과 차밭이 펼쳐졌다. 흙기와 지붕으로 붉은 빛이 도는 마을들도 대나무 바다에 섬처럼 떠 있었다.

두 시간 정도 걸어 도착한 첫째 마을의 이름은 청컹(呈坑)이다. 해발 895m에 있는 산골 마을이다. 가구 수는 10여 호. 낡은 오토바이 한 대가 교통수단의 전부인 듯 보였다. 이 마을 사는 40대 남자가 이날 길잡이 역할을 맡았는데, 산 속에서 일행을 골탕 먹인 일이 있었다. 이정표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는 계곡 먼 곳에서 들려온 어떤 소리를 향해 급하게 달려갔다. 한참 만에 돌아온 그는 그 소리가 스와(石蛙)라는 희귀 개구리의 울음이라고 했다. 뱀과 함께 사는 그 개구리 한 마리를 팔면 한국 돈으로 4, 5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단다.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에서 그 돈이 그에겐 만만치 않은 액수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길잡이 남자의 집에서 차를 대접 받았다. 평범한 중국식 녹차 같은데 향이 그윽하다. 이가 나간 맥주잔에 뜨거운 차를 가득 따라주면서, 남자의 아내는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라고 했다. 산 속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것이라 각성 성분이 훨씬 강하단다. 옆집을 기웃거리다가 흥미로운 것을 봤다. 이 마을은 집집마다 불단(佛壇)을 뒀는데 단 위에 모셔진 것은 불보살이 아니라 마오쩌둥(毛澤東)의 초상이다. 초상 속 근엄한 표정은 영구혁명을 추구한 마오의 목적론을 형상화한 것일 터인데, 이 산골에서 마오는 이미 미륵이나 산신령 같은 존재로 화한 듯했다. 마을엔 냉장고가 드물다. 그래서 더위를 피하려면 사람도 가축도 느긋해질 수밖에 없다. 흙지붕 위의 위성TV 안테나가 이채로웠다.

다시 두 시간 가량 걸어 반링춘(半嶺村)을 지나 다컹춘(大坑村)에 도착했다. 다른 프로그램을 택한 팀들과 모여 점심 식사를 하기로 약속한 마을이다. 역시 구멍가게 하나 없다. 점심 식탁엔 삶고 끓이고 볶고 튀기고 쪄서 만든 돼지고기 요리가 열 가지 넘게 올라왔다. 집에서 기르던 돼지를 아침에 잡았다고 했다. 시커먼 털을 가진 이 지역 토종돼지다. 넓은 부엌을 가진 집이 없어서 몇 집의 부엌에서 음식을 나눠 만들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손님을 맞는 왁자한 모습이 잔칫날 같았다. 말을 걸면 어린 아이들은 부끄러운 듯 도망쳤다. 다른 곳에서는 접하기 힘든 인심이 좁은 산비탈 넉넉히 고여 있었다.

400여 년 전, 쑤이창은 동양의 셰익스피어로 꼽히는 명나라 극작가 탕시안주(湯顯祖)가 지방 관리로 재직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는 쑤이창의 작은 마을들을 산책하는 걸 즐겼다. 그는 자주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낙원이다. 나는 낙원의 현령이다."

■ 여행수첩

●진에어가 내년 6월까지 인천공항과 닝보공항을 잇는 전세기를 운항한다. 월ㆍ금요일 출발. 1600-6200. 아열대 기후대에 속해 여름철이 무척 습하고 덥다. 연중 200일 이상 비가 내린다. ●기암 봉우리가 장관인 난젠옌(南尖岩) 풍경구와 폭포계곡 셴롱구(神龍谷) 등 국가지정 명승지가 있다. 명나라 분위기를 간직한 두샨(獨山) 등 옛 마을과 금광을 둘러보는 여행 프로그램도 있다. 문의 레드팡닷컴 (02)6925-2569.

쑤이창=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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