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으로 현 정권에서 '만사형통(萬事兄通ㆍ모든 일은 형님을 통한다)'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실질적인2인자의 지위를 누려온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10일 결국 검찰의 칼 끝에 무릎을 꿇었다.
이 대통령 보다 6살 위로 '대통령의 아버지 같았다'던 이 전 의원은 현 정권의 창업공신 그룹인 '6인회'(이명박 이상득 최시중 박희태 김덕룡 이재오)의 멤버로 그간 정부 요직 인사 개입 등 상당한 권력을 행사해 왔다. 그 만큼 각종 정치권 비리 문제가 떠오를 때마다 연루 의혹의 대상이 되곤 했다.
'왕차관'으로 불리며 정권 인수위 시절부터 청와대와 공기업 인사에서 막강한 실력을 행사해 온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이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다. 이 때문에 박 전 차관을 놓고 '이 전 의원이 보좌관을 이 대통령에게 파견한 것'이란 말도 돌았다.
하지만 제2권력자에 대한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정치권에서 "상식에 따라 주변의 조언을 따랐더라면 결코 끝이 이렇진 않았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이 전 의원의 첫 정치적 위기는 이 대통령이 집권 후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 직전 찾아왔다. 정두언 의원 등 새누리당 수도권 의원 55명이 이 전 의원의 총선 불출마와 국정 관여 금지를 촉구하는 '55인 파동'을 일으킨 것이다.
결국 '형님의 승리'로 끝났지만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2009년 4월 경북 경주 재보선에서 이 전 의원이 지원한 정종복 전 의원이 친박근혜계 인사인 무소속 정수성 후보에게 패한 것이다. 이후 당내 쇄신파의 인적 쇄신 요구가 빗발쳤고 결국 그는 그해 6월 '정치 2선 후퇴'를 선언했다.
정치 2선 후퇴 선언 이후 이 전 의원은 "정치 현안에서 물러나 경제·자원 외교에 전력을 하겠다"며 세계 오지를 누볐지만 '만사형통'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이 같은 이 전 의원의 결말은 지난해부터 예고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당시 박배수 보좌관이 이국철 SLS회장으로부터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면서 그는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야 했다. 이어 검찰의 저축은행 로비사건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이 전 의원 자신도 법망을 피하지 못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18대 국회의 최다선, 최고령 의원이면서도 대통령의 형이란 이유로 역차별 받아 온 최대 피해자'라는 변호성 발언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물러날 때를 받아들이지 못해 스스로 만든 결말"이라는 평이 우세한 것은 분명하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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